Contents VOL. 261

COVER STORY
‘공유경제’란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하고 차용해 쓰는 공유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제활동입니다.
생산된 하나의 재화를 여럿이 공유해 나눠 쓰는 것이지요.
합리적인 생산과 소비,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주목받는 공유경제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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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생산과 소비,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주목받는 공유경제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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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따르자니 재미가 울고, 상상을 따르자니 왜곡의 구덩이가 눈앞이다!”
역사 소재 창작물을 만드는 이의 한결같은 고민이 담긴 말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은 흥미와 몰입도, 설득력을 높인다. 하지만 개인이나 조직, 나라, 민족이 쌓아온 사실을 재료로 삼기에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이점도 크고 단점도 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세 건의 드라마가 논란 끝에 중도 하차하거나 논쟁 속에서 종영됐다. 그중 가장 귀여운 수준은 <철인왕후>다. 타임슬립과 코믹, 사극 요소를 버무린 퓨전사극을 표방하며 ‘강화도령’으로 불린 철종과 그의 비인 철인왕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드라마 자체는 성공했지만, 실존 인물인 신정왕후를 희화하고 조선왕조실록을 폄하했다는 등의 논란에 휘말렸고 제작진이 사과에 나섰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건국 초기를 배경으로 한 엑소시즘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다. 하지만 태종이 죄 없는 백성들을 학살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대군을 폄하하는 등 등장인물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중국풍 가옥에 월병과 피단 등 중국식 소품이 조선의 것인 양 노출되고 OST에도 중국 악기가 사용되는 등 ‘문화 동북공정’이라 할 만한 논란거리로 대중의 분노를 샀다. 결국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단 2회 만에 방영 폐지가 결정됐다.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지만, 해외 판권과 해외 스트리밍 계약까지 모두 해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올해 1월 말 종영된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청춘 남녀의 시대를 거스른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간첩 활동으로 폄훼하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를 미화하는 스토리로 역사 왜곡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거나 심지어 사망한 피해자들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설정이 흥미를 위해서만 이용된 탓이다.
과거에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린 창작물들은 있었다. 우리는 이런 창작물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의도하지 않게 저지른 단순한 오류인지, 어떤 목적 속에 이뤄진 치밀한 조작인지. 아마도 왜곡이라면 후자에 속할 것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 염상진은 해방 전 순천사범학교를 다닌 것으로 나오는데, 이 학교는 사실 해방 후에 설립됐다. 이것은 단순한 오류다. 나중에 작가도 그냥 ‘사범학교 출신’이라고 바꿨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으로 설정된 유의태는 허준보다 100여 년 뒤에 나온 유이태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이것은 조금 심한 오류라고 하겠다.
왜곡은 이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에서 언급한 <설강화>가 좋은 예다. 이 드라마는 ‘민주화운동 왜곡’과 ‘안기부 미화’라는 논란에 휩쓸리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그 빌미는 처음부터 제작자가 안고 들어간 것이었다. 심지어는 묘한 정치적 꼼수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받기도 했다.
사실 오류건 왜곡이건 어느 쪽이라도 문제는 문제다. 어떤 실수로 저지른 오류와 어떤 의도로 기획한 왜곡은 어느 지점에서 뒤섞이기 마련이다. 역사 소재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어느 지점’이란 곧 재미를 말한다.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흥미를 돋우는 것만큼 흥행의 보증수표가 없다. 실수는 이런 유혹으로부터 비롯된다.
1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은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하지만 오류와 왜곡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영화 개봉 직후인 2014년 여름, 이 문제가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논란의 핵심 대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배설(裴楔) 장군의 후손 경주 배씨 문중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영화 <명량>의 감독, 시나리오 작가, 소설 《명량》의 출판사 대표를 고소했다. 문중은 배설 장군이 나오는 칠천량 해전 장면, 왜군과의 내통 및 이순신 장군 암살 기도, 거북선 방화,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 등 4곳을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해, 배설 장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문중은 금전적 보상이 아닌 훼손된 선조 배설 장군의 명예 회복을 원하는 것으로 전했다.’
영화에서 배설은 이순신 휘하 장수로 나온다. 해전을 반대하며 명령을 받들지 않다가 끝내 야음을 틈타 배를 타고 도망치고, 동료인 안위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는 영화 초반에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다. 이순신이 가진 무기뿐만 아니라 휘하 장병의 사기 또한 바닥이었음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 영화적 장치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배설의 후손인 경주 배씨 문중으로서는 황당할 일이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실에서 배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시 터지는 정유재란의 시기(1597년 초) 경상우수사에 임명됐다. 상관은 원균이었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해 그 대신 통제사에 올라 있었다. 2월 말 체포된 이순신은 한 달 넘게 취조를 받으며 옥고를 치렀다. 다행히 4월 1일 석방되었으나, 백의종군의 명령을 받고 원대 복귀한다.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전열을 정비한 일본군이 재침하자, 7월 21일, 원균은 칠천량(지금의 거제도)에서 그들과 크게 한판 붙어 대패하고 만다. 배설이 12척의 판옥선을 끌고 퇴각해 전라 좌수영 쪽에 있던 이순신과 만난 것이 그 다음날이다.
그런데 배설의 행동이 이상했다. 원균은 이미 죽었고 통제사의 일은 다시 이순신에게 맡겨졌는데, 좀체 그의 명령 또한 따르려 하지 않고, 잦아지는 일본군의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달쯤 뒤 《난중일기》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소장을 냈는데, 병세가 몹시 중하여 몸조리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몸조리를 하고 오라고 공문을 써 보냈더니, 배설은 우수영(해남)에서 뭍으로 내렸다’고 돼 있다. 8월 30일의 일이었다. 거기까지는 정상적이다. 하지만 이틀 뒤인 9월 2일, 《난중일기》에는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이 도망쳤다’고 적고 있다. 탈영이었다.
명량해전은 9월 16일에 터졌다. 배설이 탈영하고 보름 뒤다. 그러니 배설의 행동반경은 ‘열두 척 신화’의 명량해전과는 아주 멀다. 그의 최후 또한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로, 《선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설이 복주(伏誅)되었다. 지난 정유년 7월 한산(閑山)의 전투에서 패전한 수범(首犯)이었으나 외지에 망명해 있었으므로 조정이 찾아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도원수 권율이 선산(善山)에서 잡아 차꼬를 채워 서울로 보냈으므로 참수하였다.’(1599.3.6.)
배설은 왜군과 내통하거나 이순신을 죽이려 하거나 거북선을 불 지르려 하지 않았다. 밤중에 배 타고 도망가다 화살을 맞아 죽지도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탈영했으며, 한참 뒤에야 다른 사람에게 참수됐다. 팩트는 ‘탈영’과 ‘참수’라는 것뿐이다.
사실 배설은 꽤 유능한 장수였다. 전공이 뛰어나고 백성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진주(晉州)에 있던 그가 경상우수영으로 발령 나자 ‘온 경내의 노인과 어린애가 떼 지어 에워싸고 지키며 나가지 못하게’(《선조실록》, 1595.2.4.) 하는 바람에 부임이 늦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한편 영악하기도 했다. 진주에서의 소란은 ‘퍼포먼스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는 해사(海事)를 지독히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수질(水疾) 즉, 뱃멀미 때문이었다. 조정에서도 ‘용맹한 장수라고 하나 수질이 있으면 주사(舟師)에 쓸 수 없을 것’(《선조실록》, 1595.2.4.)이라 했다. 백성 핑계로 부임을 미룬 속내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바다가 싫었지만, 배설은 본영에 이르러 충실히 복무했고, 칠천량 전투에서도 할 수 있는 한의 역할을 다했다. 특히 마지막에 그가 건져 나온 12척의 판옥선은 온전히 이순신의 손에 넘어가 유명한 ‘열두 척 전설’의 뒷받침이 됐다.
진중의 숨 막히는 회의 장면에서 배설 역의 인물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배설’이라는 자막이 뜬다. 사실을 강조하려는 수법이다. 하지만 실제라는 프레임으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 제작자는 정작 소송이 벌어지자 ‘어디까지나 허구요 상상’이라 발뺌했다. 검찰 또한 이를 받아들여 무혐의 처리했다.
역사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한껏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왜곡의 구덩이를 피해갈 수 있을까. 사실과 다르게 재미를 위해서만 왜곡된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역사 소재 창작물, 특히 가상의 시대나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한 시대와 인물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상상, 실제 역사와 판타지 사이에서 현명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것은 창작자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검열이나 제한으로 창작의 자유를 막아서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재미만을 위해 왜곡된 이야기가 사실의 탈을 쓰고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한다.
상상은 재미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상상은 사실의 빈구석을 채워, 사실이 진실에 가깝게 가도록 만든다. 서사 이론에서는 이 경우 ‘전형성을 획득했다’고 말한다. 전형성을 위한 정당함 없이, 재미를 위해서만 덧입혀지는 상상은 왜곡과 논란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