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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원하는
‘비만의 종말’은 가능할까

  • 글. 의학과 김인아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
  • 정리. 편집실
  • 일러스트. 박하영
비만은 체내에 지방이 과도하게 쌓인 상태를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이미 1996년 비만을 장기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규정했다. 많은 이가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비만 탈출은 쉽지 않다. 단기간에, 큰 노력 없이, 간편하게 살을 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열기를 더해가는 비만 치료제들은 정말 비만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을까?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열풍

위고비(Wegovy)와 마운자로(Mounjaro)로 대표되는 새로운 비만 치료제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연예인의 체중 감량 뉴스에는 이러한 약제를 사용했는지가 중점이 되고, 각종 SNS는 해당 약제 사용 일지를 올리거나 경험한 효과와 부작용을 간증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어떤 의사가 이야기했다고도 하는, 천연 위고비라고 불리는 식단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도 넘쳐난다.

위고비가 성인의 비만 또는 동반 질환이 있는 과체중 상태에 대해 FDA 승인을 받은 2021년 이후 GLP-1 계열의 약제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위고비를 개발한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 치료제 제조회사라는 정체성을 비만 및 대사 질환 관련 회사로 바꾸게 되었고, 2023년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됐다. 이러한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그 효과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는 이 약제들이 체중을 평균 15~20% 이상 감소시키고, 당뇨병과 이상지질혈증을 개선할 뿐 아니라 심근경색과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 위험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3년 12월 말 발표된, 비만 또는 과체중으로 당뇨는 없지만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는 전 세계 1만 76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SELECT 연구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가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을 약 20% 감소시키는 효과를 확인했다. 이는 GLP-1 계열의 약제들이 비만뿐 아니라 당뇨,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 등 복합적인 인체 내 대사 관련 질환에 효과가 있고 심뇌혈관계 질환까지 예방할 수 있는 소위 ‘명약’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이제 심뇌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모두 예방할 수 있다는 핑크빛 전망도 나왔다. 항생제를 발견하면서 모든 감염병의 종말을 예견하던 상황이 연상되기도 한다.

질병 예방이라는 직접적 효과 이외에도 비만을 이제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GLP-1 계열의 비만 약제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오랫동안 비만은 개인의 생활습관 문제로 여겨졌다. 많이 먹고 운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다. 비만을 자기관리 부족의 징표로 여겼다. 최근 연구들은 비만이 유전적 요인, 장내 호르몬, 뇌의 식욕 조절 체계, 스트레스, 수면, 사회·경제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성 질환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여전히 비만은 게으름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약제의 효과와 함께 약제를 끊고 나서 다시 급격하게 증가하는 체중을 보면서 사람들은 게으름이 비만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GLP-1이란?

‘GLP-1’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ucagon-Like Peptide 1)의 약자다.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체내 호르몬의 일종으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식욕을 억제하고 위장관 배출 속도를 감소시켜 포만감을 유지한다.

건강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비만의 종말은 병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비만은 개인의 책임 아닌 만성 질환

실제로 최근 WHO는 비만을 ‘만성적으로 진행하면서 재발하는 질환’으로 규정하고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만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만성 질환이며, 치료와 예방이 모두 필요한 건강 문제라고 천명한 것이다. 동시에 WHO는 GLP-1이 비만 치료의 주요한 수단일 수 있지만, 비만의 사회·환경적 원인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효과가 확실해서 성인 비만 환자에게 장기간 사용하는 것을 권고할 수는 있지만, 약물 중단 시 원상회복이 예상되는 만큼 집중적인 건강행태 관리를 병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투약만 해서는 비만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건강한 식품환경과 신체활동 증진, 예방 정책과 조기진단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예방 및 치료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현재까지 평생 사용 시의 효과나 중단 후 관리 방법에 따른 효과 차이, 장기 부작용에 관한 연구들이 충분히 쌓인 상태가 아니고, 치료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 매우 높아 접근성의 차이가 건강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비만을 질병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과 낙인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비만을 의료화(Medicalization)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국처럼 민간에 집중된 의료시장과 높은 의료이용률을 가진 나라에서 비만을 약으로 치료 가능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성지라고 불리는 처방 병원과 약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처방 기준 미만의 BMI인 여성들이 대기실에 즐비하다는 이야기는 SNS에 흔하게 등장한다. 비만에 대한 한국의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는 한편, 비만을 약을 살 돈이 없는 경제수준의 지표로 여기게 할 수 있다는 우려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WHO가 밝힌 것처럼 이 약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보편적 접근성이 확보만 된다면, 매년 10억 명의 예방 가능한 사망자 수를 줄이고, 저·중소득 국가에서 엄청난 증가 속도를 보이는 비만 관련 질환의 전 세계 질병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비만의 종말로, 더 나아가 심뇌혈관질환의 종말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건강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식품 환경, 과도한 노동시간, 수면 부족, 직무스트레스 같은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인데 약물만 처방한다고 해서 건강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에게 매일 30분씩은 운동을 하셔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가 허망한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 중요한 것은 비만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 해소

20여 년 전 미국 UC 버클리의 역학자 레너드 사이미(Leonard Syme)는 강연에서 “흡연,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비만, 신체활동 부족, 당뇨 등 알려진 위험요인을 모두 고려해도 관상동맥질환의 절반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러한 위험요인이 거의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심혈관질환은 발생한다. 반대로 여러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음에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후 발표된 수많은 연구는 건강이 단순히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영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화이트홀(Whitehall) 연구는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교육수준, 소득, 노동조건, 스트레스 같은 사회적 요인들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를 축적했다.

비만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한 식품은 종종 더 비싸고, 운동할 시간은 부족하며, 장시간 노동과 야간 근무는 체중 증가 위험을 높인다. 최근에는 비만이 오히려 빈곤층에서 더 흔한 질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고가의 비만치료제의 등장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접근이 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두 투약을 받는다고 해서 모든 비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의 비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사회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비만치료제의 성공은 분명 의학의 중요한 진전이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약값 인하에 모든 것을 쏟아붓지는 말아야 한다. 아직 일시적인 것으로 알려진 단기간의 효과를 위해 장기간 눈에 띄지 않는 효과를 위한 투자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좋은 약을 저렴하게 모두에게 제공하기 위한 노력 이외에, 진정한 의미의 비만 예방은 모든 사람이 건강한 식품을 선택할 수 있고, 어린이들이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받으며, 충분히 쉬고 운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건강한 체중과 체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소위 ‘뼈 말라’를 추구하는 청소년들을 위험에서 구할 수도 있다. 비만의 종말은 병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