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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상은 키오스크 사회로 빠르게 변모했다. 카페, 식당, 영화관뿐 아니라 병원이나 관공서까지 앞다퉈 키오스크 설치에 나섰다. 도입 초기만 해도 사람이 아닌 기계를 상대로 주문하고 결제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이제는 거리낌없이 화면을 터치하게 됐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럴까?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은 화면에 손이 닿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이며, 지적장애인·고령자들은 키오스크를 보기만 해도 걱정이 앞선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키오스크의 확산은 또 다른 배제와 차별일 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시각장애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노트북 화면이 누군가에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상은 점점 스마트해지는데 누군가에게는 그 스마트함이 오히려 높은 벽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죠.”
웨이브랩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예진 학생은 평소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기술 솔루션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2025년에 키오스크 설치·운영 사업자의 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를 위해 마련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됐다. 음성 인식 및 음성 안내, 점자 표시 등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키오스크가 2023년 1월 28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돼 온 끝에, 올해 1월 28일부터는 완전히 의무화된다는 거였다. 이 소식은 웨이브랩이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보조기기 ‘다잇다’를 구체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해당 아이템으로 웨이브랩은 지난 1월에 열린 헐트 프라이즈 한양대 온캠퍼스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헐트 프라이즈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려는 대학생을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을 돕는 국제 대회다. 대회는 △온캠퍼스(On Campus) △내셔널 컴퍼티션(National Competition) △디지털 인큐베이터(Incubator) △글로벌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글로벌 파이널(Finals)의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 이 중 첫 번째 단계인 온캠퍼스는 참가 대학별로 열리는데 한양대 온캠퍼스는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가지를 바탕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아이디어들의 열띤 경연장이 됐다.
웨이브랩은 한양대·한양여대 연합 창업동아리인 ‘한양벤처클럽(HVC)’에서 만난 권혁준 학생과 황예진 학생에 의해 2025년 3월 결성됐다. 단순한 스펙 쌓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불편함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보자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이후 권혁준 학생의 권유로 같은 과 동기인 이승준 학생이 합류해, 지금의 3인 체제를 이루게 됐다. 처음부터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자는 생각으로 위기투합한 만큼, 헐트 프라이즈 참가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해 11월 헐트 프라이즈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은 권혁준 학생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헐트 프라이즈는 전 세계 대학생들이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기 위해 경쟁하는 ‘대학생들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기한이 촉박하기는 했지만, 저희 솔루션이 단순히 국내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정보 접근성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지 객관적인 검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CTO를 맡은 권혁준 학생이 하드웨어 설계와 기기 제어 로직을 담당하며 아이디어가 실제 구동하는 제품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기술을 총괄했다. 황예진 학생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수익 모델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 비즈니스 모델 및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이승준 학생은 제품의 소프트웨어 개발 및 UI 최적화를 담당했다. 권혁준 학생은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실제 사용자의 편의성과 현존하는 200여 가지의 다양한 키오스크 규격에 호환되는 범용성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황예진 학생은 “단순히 착한 아이템이 아니라, 도입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승준 학생은 “장애인들이 키오스크를 조작할 때 겪는 물리·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할 솔루션 연구에 몰두했다”고 전했다.
웨이브랩은 2026년부터 시행되는 배리어프리 의무화 법안을 분석해, 도입 비용 대비 법적 리스크 해소와 사회적 이미지 제고라는 이득이 더 크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지나야 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하길 수십 차례. 그리고 설계를 갈아엎으며 만든 시제품도 30개가 넘는다. 실제 이용자인 장애인들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승준 학생은 장애 유형에 따라 요구사항이 달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좋은 기능이 지체장애인에게 방해가 될 때도 있어 각기 상충하는 요구사항들을 하나의 소프트웨어 안에서 아우르는 로직을 설계하는 게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짠 코드가 누군가에게 독립적인 일상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개발자로서 행복한 마음이 컸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웨이브랩의 ‘다잇다’는 기존 키오스크를 교체하지 않아도 간단히 부착하기만 하면 장애인의 사용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키오스크 모듈형 보조기기다. 기존 키오스크를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로 교체하려면 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소상공인에게는 부담이 큰 상황. 그래서 저렴한 도입 비용과 높은 범용성이 최대 강점인 ‘다잇다’는 개발되자마자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는 시제품 개발 및 인증 단계를 거쳐 시장 출시가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실제 시장에서 영업과 유통을 담당할 결제 단말기 업체에 사업을 양도해 기술료 수익도 거뒀다. 이제 시장에 보급될 일만 남은 셈이다.
“저희 기기는 단순히 키오스크 조작을 돕는 것을 넘어 장애인들이 세상 모든 서비스와 연결되는 접점이 될 것입니다. 향후 헐트 프라이즈를 단계별로 준비하며 글로벌 시장에 맞는 표준을 정립해 나갈 계획입니다. 기술은 소외된 사람들을 향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웨이브랩 팀 3인은 “기술의 끝은 결국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로 디지털 소외계층과 세상을 연결해 나갈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전공 지식을 가치 있는 곳에 써보면,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이 크게 다가올 것”이라고 한양인들을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웨이브랩은 헐트 프라이즈의 다음 단계인 내셔널 컴피티션을 앞두고 솔루션 보강에 여념이 없다. 바쁘고 지치는 일상이지만, ‘세상을 잇는 따뜻한 연결’이라는 꿈이 빛나기에 그 누구보다 따사한 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