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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 저는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요.”
어느 날 붉게 충혈된 눈에 지친 표정의 환자가 병원을 찾아와 물었다. 권영도 동문이 진료하는 환자들 중에는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다가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 많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왔지만, 그 끝에 손에 쥔 것은 번아웃과 우울, 불안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열심히 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날까? 권영도 동문은 그 이유를 ‘완벽주의’에서 찾았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완벽을 중요한 잣대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학생에게는 모든 분야를 잘하는 팔방미인이 되라 하고, 직장인에게는 짧은 시간 내에 업무를 완벽히 처리하라 다그치고, 부모에게는 아이가 흠 없이 자라게 서포트해야 한다고 부담을 주죠.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과 완벽주의를 구분해야 합니다.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남과 나를 지나치게 비교하고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권영도 동문은 완벽주의자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높은 기준’을 꼽았다. 스스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선을 그어놓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좌절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을까 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탓에 그 일에 반복해 매달리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는 큰 우울감에 시달린다. 완벽주의는 뇌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강박적 성격장애, 강박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회피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등 다양한 정신과 질환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완벽주의자들은 과제나 보고서의 디테일 때문에 밤을 새우기 일쑤다.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면 신체적, 심리적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완벽주의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All or None이죠. 완벽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뤄두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거죠. 시작 전 준비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큽니다. 결혼이나 출산을 꺼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들이 생기는 것,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 등도 이런 완벽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권영도 동문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문제를 아예 외면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이런 완벽주의는 인간관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이다.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사이에서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인관계에서도 완벽함은 있을 수 없는 법. 불편감과 의무감만 큰 관계라면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삶을 지치게 하는 완벽주의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해답은 ‘대충’이라는 도발적인 단어에 있다. 대충이라는 말은 게으르고 무책임하다는 뉘앙스를 준다. 하지만 대충의 사전적 의미는 ‘대강을 추리는 정도로’다. ‘자세하지 않은 기본적인 부분만 따낸 줄거리(대강)’, ‘대략’, ‘적당히’와 일맥상통한다. 무책임이 아니라 합리와 효율을 말하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대충 하셔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완벽함이 아닌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자는 거죠. 시험을 예로 들자면, 자주 나오는 문제나 핵심이 되는 문제 위주로만 공부하고 자주 나오지 않거나 틀릴 것 같은 문제는 과감하게 패스하는 겁니다. 100%가 아니라 80%에 기준을 맞추는 거예요. 기본이 되는 핵심은 챙기고 그 외 부수적인 디테일은 조금 내려놓는 겁니다. 연습과 도전,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권영도 동문은 자신의 기준에서 100%를 이뤘다고 해서 이것이 꼭 100% 만족도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노력 대비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80%에서 100%를 만들기까지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이 기존의 4배, 5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열 가지 중 한두 가지라도 대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언제고 일상은 달라질 수 있다. 정리정돈과 청소를 잘하는 사람은 잘 버리는 사람이다. 권영도 동문은 잘하려는 마음,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을 어느 정도 버려야 일상의 여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대인관계에서도 기대치를 낮추고, 요령 있게 거절하고 거리를 두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꾸준히 연습해야 합니다. 초보운전자가 베테랑 운전자가 되는 과정과 비슷해요. 무의식적으로 대충하게 될 때까지는, 완벽하지 않다는 불편함과 불안을 참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학업과 일, 인간관계는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것이 흔들리면 일상이 무너지게 된다. 권영도 동문은 병원을 찾았던 환자들에게 더 적극적인 조언을 전하고, 병원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됐다. 짧은 진료 시간 내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아 전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로 출간하는 책이지만, 망설임 없이 2개월 만에 탈고했다. 효율성의 중요성을 알기에 본의 아니게 솔선수범하게 된 결과다. 앞으로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권영도 동문은 2023년부터 <정신과 일타강사>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이 또한 환자들과 조금 더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해 개설했다. 현재 146개 영상이 업로드돼 있으며, 구독자 수도 2천 명이 넘는다. 질환 관련 이야기, 환자와 공유하고 싶은 정보가 주된 콘텐츠다. 그중 ‘우울한 유전자 보유 1위 대한민국’이라는 영상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병률 1위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걸까?
“우울증은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 타고난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우리보다 행복한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은 불안과 우울함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며 성실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고속 성장을 이루게 된 것 역시 이런 영향이죠.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공존하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예과 96학번. 한양대에서 보낸 그의 시간은 어땠을까.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며 공부에 매진했던 시간, 바쁜 일상을 쪼개 친구들과 캠퍼스 주변을 누볐던 일들이 모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양대 동문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정신건강의학과 분야에서도 뛰어난 이들이 많다. 권영도 동문은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인맥이 많다는 것이 한양대의 큰 장점이라고 귀띔했다.
“완벽은 무결점을 추구하는 ‘절대적 완벽’과 누구보다는 잘하고 싶다는 ‘상대적 완벽’,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이루는 ‘현실적 완벽’의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양인들이 현실적 완벽과 상대적 완벽을 지향하며 일상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목표지향적이기보다는 행복지향적인 사람이에요. 행복하게 사는 게 제 꿈이죠. 후배들에게도 너무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가진 에너지와 시간은 정해져 있다. 자원이 한정적일 때 그것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지나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을 아끼는 대충의 미학을 통해 행복한 일상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