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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하는 질문 기반의
독서 대축제 ‘2025 독서골든벨’

THE GOLDEN BELL FESTIVAL OF READING

Reader가 Leader다

한양인의 독서문화 고양과 리더십 개발을 위한 독서 대축제 ‘2025 독서골든벨’이 개최됐다. 독서골든벨은 책을 통해 지혜를 얻고, 책과 더불어 우정을 쌓으며, 책과 함께 추억을 기록하는 축제의 장이다. 2009년 한양대학교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처음 기획된 후 매년 11월에 진행된다. ‘Reader가 Leader다’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17년 동안 독서 본연의 가치를 일깨우는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왔다.

독서골든벨은 ‘한양인 권장도서’를 바탕으로 지식과 지혜를 겨룬다. 행사를 주관하는 백남학술정보관은 개교 100주년에 맞춰 한양인 권장도서 100선을 완성하기 위해 2009년 한양인 권장도서 70선을 선정‧발표한 이래 매년 1권씩 추가해 왔으며, 현재 86선까지 컬렉션을 완성한 바 있다. 올해의 지정도서는 <한나 아렌트와 차 한잔>, <정의란 무엇인가>, <도둑맞은 집중력>, <물은 H2O인가?>, <예술 역사를 만들다> 5선으로 인문, 사회, 과학, 예술 영역을 아우를 수 있게 선정됐다. 학생들은 지정도서 5선을 읽고 3인 1팀을 구성해 독서골든벨에 참여했다.

지난 11월 7일 필기시험으로 치러진 예선 대회에는 72팀 216명의 학생이 함께했으며, 이 중 15팀 45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11월 14일에 치러진 본선은 지정도서 기반의 심화 퀴즈 대회였다. 본선 총점 상위 4개 팀이 같은 날 진행된 결선에 올라 질문 토론과 스피치를 겨뤘다. 올해 독서골든벨의 총상금은 1750만 원으로 대회 성적에 따라 팀별 장학금으로 지급됐다.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책 읽기 체험

올해는 특히 AI와 함께하는 질문 기반 독서라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돼 눈길을 끌었다. 예선을 통과한 15팀은 AI 도구를 활용해 지정도서와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연결하는 서술형 질문 5개씩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제출한 75개의 질문을 심사위원이 검토해 결선에서 사용할 10개 질문을 선정했다. 결선 진출 4팀은 이 10개의 질문 중에서 1문제를 선택해 질문의 핵심 주제와 관련 도서 내용, SDGs 연계 등을 토론했다. 팀별 질문 토론 후에는 500자 이내의 서술형 답변을 작성하고 팀 대표가 이를 3분 스피치로 발표했다.

2025 독서골든벨은 △독서와 AI 학습의 융합 △집단 지성과 AI의 시너지 △SDGs와 연계한 문제 해결 능력 함양을 지향하며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행사로 마무리됐다. 학생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AI를 활용해 책의 내용을 심도 있게 분석‧확장하는 새로운 독서 방법을 경험했다. 또 AI가 제공하는 정보로 질문을 만들고 팀원들과 협력해 정보의 신뢰도를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협력 학습, 그 시너지를 체험했다. 더불어 권장도서와 SDGs를 연결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고 AI를 활용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탐색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책 읽기, 미래지향적인 학습 방식을 체험하는 기회였다.

독서골든벨은 ‘Reader가 Leader다’라는 슬로건 아래 창의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통섭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개최돼 왔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골든벨을 울리다

생각 공유자 : ‘2025 독서골든벨’ 대상팀 정세빈 학생(철학과 23)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라.  영국 2파운드 동전의 옆면에 새겨진 아이작 뉴턴의 말이다. 과거의 지식 위에 서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멀리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독서’다.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저마다의 시대에서 치열하게 사유했던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번 독서골든벨을 준비하며 나는 이 경험을 했다.

대회 출전은 같은 팀 김다인 학우(철학과 23)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잘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고, 바쁜 학기 중에 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소중한 동기와 함께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사실 나는 과제가 아니면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골든벨’이라는 뚜렷한 목표는 오랜만에 과제가 아닌 목표로 책을 펼치게 해주었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회 방식이 ‘AI와 함께하는’ 쪽으로 변했고, 팀원 구성도 2명에서 3명으로 늘었다. 주변에서 팀원을 구해보려 해도 다들 부담을 느끼는지 쉽게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도서관 매칭 시스템을 통해 정예지 학우(유기나노공학과 24)와 팀을 이뤘다. 처음에는 전공도 성향도 너무 다를 것 같아 걱정했지만, 오히려 학문적 배경이 다른 팀원이었기에 서로의 빈틈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며 더 탄탄한 팀이 될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된 것은 거의 없었다.  독서골든벨 직전에 중간고사, 과제 일정이 겹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버거웠다. 하지만 혼자 출전하는 대회가 아니기에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끝까지 노력하고 싶었다. 대회 중 화이트보드에 답을 적는 다인이의 손이 떨리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상으로 우리 팀 이름이 불리던 순간, 대학 생활 중 가장 강렬한 성취감을 느꼈다.  한 학기 내내 고생한 과목에서 A+를 받았을 때보다 훨씬 뿌듯했다. 준비 과정에서 좋은 책을 읽고 많은 걸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람찼지만, 그 노력에 상이라는 보상이 더해지니 그 기쁨은 배가 됐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에 대한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공계 학문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세상의 중심으로 보이는 요즘, 철학이라는 순수 학문은 자칫 시대의 흐름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팀원들과 토론할수록 나는 오히려 철학이야말로 복잡한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독서골든벨을 준비하며 철학도로서 배운 사고방식이 큰 힘이 됐다.  단순히 예상 문제의 답안을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저자가 왜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는지, 그 문장 뒤에 어떤 시대적 조건이 깔려 있는지, 어떤 개념과 논리가 서로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작동했다. 철학을 공부하며 늘 훈련해 왔던 ‘행간을 읽는 방법’이 대회에서도 도움이 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철학은 시대에 뒤처진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 같은 학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인간의 사유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난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넓고 복잡했다.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 그들이 내렸던 결론, 그리고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사유 과정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현대 사회의 집중력 저하를 만든 구조적 문제부터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사유’의 능력까지, 책은 내게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처럼 단지 거인의 시야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읽고 이해한 내용을 나의 언어로 다시 소화해 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보와 의견이 넘쳐나는 지금, 나만의 시각과 가치관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나는 ‘책을 읽는 이유’를 천천히,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대회 준비나 과제, 시험을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 꾸준히 책을 읽고 싶다. 거인의 어깨에 한 번 올라본 이상, 이 높이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읽어온 책과 쌓아온 생각들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거인의 어깨’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AI와 함께하는 방식으로 변모한 ‘2025 독서골든벨’에서 정세빈 학생이 속한 ‘정답을쌔빈다잉’ 팀이 대상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