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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길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일

법무법인 동인 가족법센터장 박보영 동문(법학과 80)

  •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판사에게는 재판에 관련된 자료를 검토하고 법률에 근거해 판결을 내리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 그만큼 공명정대해야 하고, 신념도 갖춰야 한다. 법조계의 유리천장을 뚫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박보영 동문. 대법관을 역임하고 원로법관의 임기까지 마친 그가 올해 9월부터 법무법인 동인의 가족법센터장으로서 새출발하게 됐다.
대법관, 원로법관을 역임하고 올해 9월부터 법무법인 동인에서 새출발을 시작한 박보영 동문.

역대 3번째 여성 대법관

박보영 동문이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던 1980년만 해도 판사는커녕 법학과에 지원하는 여학생 자체가 드문 시절이었다. 40명의 정원 중 여학생은 박보영 동문 하나였다. 게다가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300명의 합격자 중 여자는 박보영 동문을 포함해 5명뿐이었다. 그것도 다른 해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그렇게 여성 법조인이 많지 않던 시기,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커리어를 쌓았고 2012년 여성으로서는 3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다.

“사실 법관에게 성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리에 따라 엄정히 판결해야 하므로 성별과 무관하게 재판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건을 해석할 때는 여성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겠죠. 편향된 해석을 지양하기 위해서라도 성별 균형은 필요합니다.”

박보영 동문이 법조인의 꿈을 키우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지혜로운 판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 이를테면 ‘어사 박문수’, ‘솔로몬의 재판’, ‘목민심서’ 같은 책을 읽으며 판관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법조인이 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소한 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여성으로서 차별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법조인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법학과 재학 시절 장학금, 특강, 기숙사 등 사법시험 준비생을 위한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그 덕분에 꿈을 이뤘죠.”

그렇게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법조인이 됐고, 당시 법조인을 목표하던 여자 후배들의 또 다른 꿈이 됐다. 현재 같은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안선영 동문(법학과 90, 의료보건 전문)도 그중 하나다. 안선영 동문은 “선배님이 가끔 학교에 와서 후배들을 격려해 주셨는데, 언제나 힘이 되고 닮고 싶은 선배님이었다”고 전했다.

1987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후 서울민사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근무했고, 서울가정법원 배석판사, 단독판사, 부장판사를 거쳐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2004년부터 7년간은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했다. 제6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다문화 가정과 성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2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당시 대법관 취임식에서 박보영 동문은 “법정 안팎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 소수자, 여성, 가족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법적 해결책을 고민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법조계의 유리천장을 뚫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박보영 동문은 당시 법조인을 목표하던 여자 후배들의 또 다른 꿈이 됐다. 현재 같은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안선영 동문(법학과 90)도 그중 하나였다.

재판의 기본은 성의껏 듣는 것

6년의 대법관 임기를 마친 2018년, 박보영 동문의 다음 행보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대형 로펌을 마다하고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여수시법원 즉, 시군법원의 판사(원로법관)에 지원한 것이다. 시군법원은 지역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판사의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소규모 법원이다. 이때 전직 대법관이 소도시에서 소액사건을 다루는 ‘시골 판사’가 됐다며 본의 아니게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대법관 출신이 시군법원의 판사직에 지원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마침 제가 대법관을 마칠 무렵 원로법관 제도가 도입돼 지원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언론보도가 많이 났어요.(웃음) 그동안 저를 위해 애써주신 아버지를 위해 친지와 친구분들이 계신 고향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 지원한 것이죠.”

대법관에서 다시 1심 재판장으로 돌아가니 대법원에서는 맡기 어려웠던 민생 사건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사건은 대부분 서류로 판단하기에 당사자의 실제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박보영 동문은 재판의 기본은 당사자의 말을 성의껏 듣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솔로몬왕이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두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워하는지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법률용어로 ‘변론의 전취지(변론에 나타난 당사자의 주장, 태도, 증거 제출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라고 합니다. 저 역시 법정에서 당사자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박보영 동문은 판결 선고 이후 재판 진행이나 선고 때 자신의 사정을 잘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받곤 했다. 대법관을 지낸, 경력 많은 법관이 경청하는 성의를 보이니 판결이나 조정에 승복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이런 이유로 박보영 동문은 시니어법관제도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

박보영 동문은 한양대의 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되새기며 법률 상담이나 법률 교육 등 다양한 재능기부 활동도 펼쳐왔다.

한양대의 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항상 염두에 두며 살아왔습니다. 법조인의 길 자체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임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가족법센터장으로 새출발

올해 2월 여수시법원에서 퇴임한 박보영 동문은 이제 법무법인 동인에서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 가정법원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가사 분쟁, 상속, 소년 사건 등을 다루는 가족법센터의 센터장을 맡았다. 변호사 시절 다수의 이혼 사건을 다뤘다는 박보영 동문. 그는 JTBC ‘이혼숙려캠프’ 등 이혼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요즘 시류를 어떻게 바라볼까.

“단순히 자극적인 이야기로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연자와 시청자가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혼에는 자녀 양육, 재산분할, 정서적 회복 등 많은 문제가 뒤따라요. 따라서 실질적인 정보와 전문적인 시선 등 교육적 요소를 담는다면 시청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양대의 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항상 염두에 두며 살아왔다는 박보영 동문은 현재 법무법인 동인의 공익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법률 상담이나 법률 교육 등 다양한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이렇게 법률 지식을 나누는 활동은 사실 그가 줄곧 해오던 것이다. 학교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꿈을 이뤘으니 그 고마움을 갚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법조인의 길 자체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보영 동문. 이제 또 다른 여정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며, 꿈을 찾아 분투하고 있을 한양의 후배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의 길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조급해하지 마세요. 지금 고민하고 헤매는 과정은 다분히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게 될 때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