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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와 통신이 융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형석 교수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몸에 붙이거나 삽입하는 의료기기와 통신 기술의 접목을 꾸준히 연구해 온 연구자다. 그 성과 중 하나가 와이파이 기반 무선 캡슐내시경이다. 차세대 통신의 핵심 기술인 ISAC(Integrated Sensing and Communication)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하나의 무선 시스템이 센서와 데이터 송수신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했다. 이와 같은 캡슐내시경 개발은 2022년, 유형석 교수가 이끄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전파연구센터의 장기 연구 과제로 ‘움직이는 의료기기’가 선정되며 시작됐다.
전통적인 내시경은 입에 긴 관을 넣어 검사하기에 환자에게 상당한 고통과 부담을 준다.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무선 캡슐내시경이 등장했지만, 그 한계가 분명했다. 초기 캡슐내시경은 촬영한 영상을 캡슐 내부 메모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몸 밖으로 배출한 후에야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르고 안정적인 무선통신을 캡슐에 적용하면 캡슐을 삼키는 것만으로 몸속 영상을 즉시 바깥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설계한 초광대역 안테나와 와이파이 모듈을 캡슐에 내장해 클라우드로 영상을 전송하는 시스템 개발에 몰두했어요. 캡슐이 촬영한 고해상도 영상을 실시간으로 외부에서 받아보며 원격 진단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실험 결과 기존 상용 캡슐이 약 50㎝ 이내의 매우 짧은 통신 범위를 갖는 데 비해, 연구팀의 캡슐은 최대 5m까지 영상을 전송할 수 있었다. 더욱이 HD(1280×720) 해상도 기준 평균 0.5초 미만 지연, 패킷 손실률 9% 이하의 안정적인 성능을 보였다. 환자가 별도의 벨트형 수신 장치를 착용하지 않아도 캡슐 영상이 클라우드로 직접 보내져 의료진이 곧바로 확인할 수도 있다. 세계 최초, 진정한 의미의 원격 실시간 진단이 가능한 캡슐내시경을 구현한 것이다.
이처럼 무선 의료기기의 진화는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다. 혁신의 앞단에 선 유형석 교수는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2025년 과학의 날 및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차세대 인체 삽입‧착용형 무선 의료기기 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 덕분이다.
우선 지난해 『네이처』 논문으로 ‘주파수 불변형 웨어러블 안테나’ 기술을 발표했다. 안테나를 아무리 늘리거나 구부려도 원래의 무선 주파수 성능이 유지되는 신축성 전자기기 기술이 핵심이다. 고무처럼 탄성이 있는 기판에 세라믹 나노입자를 혼합한 특수 복합 소재는 피부에도 붙일 수 있다. 작은 센서지만 장거리 무선통신이 가능해 실험적으로 90m 이상 떨어진 거리까지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전자피부 구현에 성공한 것이다.
“실제로 이 전자피부를 통해 뇌파나 근육 신호, 피부 온도 같은 인체 신호를 멀리서 무선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향후 몸에 붙이는 웨어러블 기기나 생체 이식형 장치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사람이 움직이더라도 안정적인 무선 연결로 건강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LoRa(Long-Range) 기반 ‘스마트 의류 생체 데이터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도 걸출한 성과로 주목받는다. LoRa란 멀리까지 데이터를 보낼 수 있으면서도 전력 소모가 매우 적은 장거리 무선통신 기술이다. 유형석 교수는 LoRa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의류를 개발했다. 디지털 재봉틀을 활용해 도전성 실로 직물 안테나를 만들어 옷감에 새겨 넣은 방식이 혁신적이다. 거추장스러운 장비 없이 센서를 새긴 옷만 입어도 각종 신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유형석 교수의 연구는 언제나 의료 현장과 맞닿아 있다. 열악한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원천기술부터 임상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의 연구가 중요하다. 한양대학교병원, 부산대학교병원 창업기업 등 병원은 물론 관련 기업과의 산학연 협력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단순한 논문 성과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반도체나 통신처럼 자생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산업체·병원·연구소가 한 방향으로 협력해 기술 개발에서 임상 적용까지 이어지는 실행 가능한 의료기기 생태계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죠. 환자분들이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이고요.”
무선 의료기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온 유형석 교수. 그가 현재 주목하는 혁신은 차세대 5G·6G 통신 기술과 인체의 완전한 융합이다. 지금까지는 피부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나 체내 삽입형 센서가 각각 독립적으로 동작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모든 디바이스가 하나의 통합 네트워크 안에서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그린다. 핵심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인체를 중심으로 한 지능형 통신 생태계, ‘인간 중심(Human-Centric) 6G IoMT(Internet of Medical Things)’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부에 부착된 패치형 기기가 체내 삽입형 센서로부터 데이터를 받으면 즉시 분석하고, 이상이 감지되면 의료진에게 자동으로 전송하는 것이죠. 병원 중심의 진단과 치료가 아닌 사람의 몸 자체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건강 상태를 관리하는 시대, 이것이 제가 연구자로서 그리고 있는 다음 단계의 목표입니다.”
5G‧6G 차세대 통신과 결합한 센싱-통신 융합 기술은 의료 환경과 환자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 갈까? 유형석 교수는 실시간으로 그 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의료와 통신이 결국 인간을 위한 기술로 수렴하도록 말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으며 세계 최초의 성과를 묵묵하게 일구고 있는 그는 과감한 도전 정신을 강조한다.
“한양의 젊은 인재들이 폭넓은 지식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길을 용기 있게 개척하길 바랍니다. 미래의 과학기술, 특히 의료와 정보통신이 만나는 융합 분야는 여러분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통신 기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 유형석 교수가 다져온 길이 젊은 연구자의 꿈으로, 의료 현장의 혁신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