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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스케일 소재 연구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여는 중

화학과 이준석 교수

  • 글 박영임
  • 사진 손초원
이준석 교수는 최근 서울아산병원 박정훈·김도훈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3차원 다공성 나노 네트워크 코팅 기술을 개발했다. 본 기술은 식도 내벽과 스텐트 사이의 접착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스텐트의 고정력을 향상해 준다. 이번 연구 성과는 지난 3월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의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스텐트 체내 고정력 100배 향상

염증이나 손상, 종양 등에 의해 발생하는 식도 협착은 식도가 좁아져 음식물을 삼키기 어렵게 하고 통증을 일으킨다. 고령화와 암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식도 협착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좁아진 식도를 넓히기 위해 스텐트 시술 등이 이뤄진다. 하지만 현재 사용 중인 스텐트는 환부에서 쉽게 이탈하는 문제가 있다. 식도 협착 환자군에서 스텐트 이탈률은 30%에 달해 재삽입에 따른 환자의 고통과 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준석 교수 공동연구팀은 스텐트 표면에 3차원 나노 네트워크 구조를 코팅한 뒤, 그 내부에 생체접착제를 채워 넣는 방식인 ‘나노퍼즐 접착 기술(HiRINC)’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기존 비혈관 스텐트는 플레어나 갈고리 등으로 고정해야 하는데, 시술이 복잡하고 조직 손상, 이탈, 이물감 등의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에 안정적인 고정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본 기술은 실리카 기반 3차원 나노구조체와 생체적합 하이드로겔을 결합해 스텐트 금속 표면에 접착 기능을 부여하는 고접착 나노 인터페이스 기술입니다.”

이는 기계적 맞물림(Interlocking)과 수소 결합 기반의 이중 접착 메커니즘을 구현해 봉합 없이도 안정적으로 스텐트를 체내에 고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본 기술은 생체접착제의 결합력을 기존 대비 100배 이상 높여 스텐트의 체내 이탈을 방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염증 반응과 조직 과형성을 줄이고 습윤 환경에서도 접착제의 부피 팽창을 억제하는 등 생체 적합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

“우리 몸은 소화기계, 호흡기계, 비뇨기계에 많은 관이 존재하는데, 본 원천기술은 이러한 관들이나 체내 삽입형 의료기기에 적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많습니다. 또 최근에는 동물의 수명이 길어지며 동물을 대상으로 한 스텐트 시술 수요도 커지고 있어요. 이에 따라 향후 동물 스텐트로도 확장할 계획입니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화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준석 교수는 나노 사이즈의 다양한 기능성 재료 합성기술을 개발할 뿐 아니라 화학의 대중화에도 힘 쏟고 있다.
이준석 교수는 2023년 생명공학과 이동윤 교수, 생명과학과 김영필 교수와 함께 생체 내 암세포를 확인하고 그 주변의 물 분자를 가열해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헬스케어 분야의 기능성 나노 소재 개발

이준석 교수가 서울아산병원과 스텐트에 대한 공동연구를 시작한 것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한양대학교 화학과에 부임하기 전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공동연구의 첫 번째 결실은 스텐트에 약물 방출 기능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스텐트 이탈 문제가 심각하니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받고 두 번째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이 외에도 이준석 교수는 여러 공동연구를 펼치고 있다. 2023년 생명공학과 이동윤 교수, 생명과학과 김영필 교수와 함께 생체 내 암세포를 확인하고 그 주변의 물 분자를 가열해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근적외선 영역에서 긴 수명을 가지는 신호처리 기술이자, 국소적 물 분자 가열을 통해 광열치료가 가능한 다기능성 나노입자 개발 연구였다. 향후 악성 뇌종양 진단과 치료에 활용되리라 기대되는 이 성과는 2023년 5월,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같은 연구팀과 장 내에 오래 머무르며 활성산소종(ROS)을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나노 소재도 개발했는데, 동물 모델에서 지속적인 항염증 효과와 조직 회복을 확인했다. 또 한양대 의학과(소화기내과) 전대원 교수, KIST 이현범 박사, 박진영 박사와는 비알콜성 지방간염의 치료를 위해 지질 방울을 선택적으로 부수고 지질을 흡수하는 나노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이준석 교수는 화학과 소속이지만, 대부분 의학과나 생명과학과 교수들과 협업하며 질병 치료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가 질병 치료나 진단과 같은 헬스케어 분야 응용 연구를 추진하는 것은 나노 사이즈의 다양한 기능성 재료 합성기술 개발이 이준석 교수의 주력 연구 분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 안의 세포, 박테리아, 바이러스, 탄수화물 같은 영양소는 모두 나노 스케일 범주에 속합니다. 항체, 효소, 약물 등을 우리 몸 안에 전달하여 질병을 치료하거나 이미징을 하기 위해서는 나노 스케일의 기능성 소재를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몸 안의 세포, 박테리아, 바이러스, 탄수화물 같은 영양소는 모두 나노 스케일 범주에 속한다. 이준석 교수 연구실은 헬스케어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나노 소재를 연구한다.

5년 내 시장 출시를 목표로 실험실 창업에 도전

사실 이준석 교수는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유망 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 분야에 적용할 나노 신소재 개발 연구에 주력하다 한양대 화학과 교수 임용 제의를 받아 화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실용적인 연구를 중시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기초과학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기초학문 기반을 탄탄히 갖추면 보다 더 많은 연구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한양대에 부임했는데, 실제로 연구 성과의 질이 월등히 향상됐다.

다양한 연구에 매진 중인 이준석 교수는 대중에게 화학의 재미와 중요성을 전파하는 화학 커뮤니케이터로도 활약했다. 지난 3월, 우리의 삶이 어떻게 화학과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EBS 다큐 프로그램 <다큐프라임>의 ‘생각보다 화학’ 편에 출연한 것이다.

“화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학문의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 것도 연구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화학을 일상과 동떨어진,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EBS에서 화학 대중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을 때 1년 정도 기획에 참여하고 방송에도 출연했습니다.”

이준석 교수는 화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한편, 세상에 도움이 될 연구를 하고 싶다는 연구자로서의 목표 또한 잊지 않았다. 스텐트 연구를 통해 개발한 기술이 시장성을 갖췄다는 사실을 엿본 뒤, 2022년 ‘브이앤(VN, Versatile nanoplatform)’이라는 실험실 창업 기업을 설립했다. 현재 브이앤은 나노퍼즐 접착 기술을 적용한 비혈관 스텐트로 5년 내 식약처 의료기기 인허가를 획득하겠다는 목표 아래 후속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사과정 때 앞으로 어떤 연구자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그때 지금 세상에서 필요로 하고 실제 산업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재학 시절에 그런 고민을 많이 해야 사회에 나가서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목표를 세웠다면 집념을 갖고 밀고 나가길 바랍니다.”

연구의 성과물이 제품이 되어 세상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은 이준석 교수의 오랜 꿈이었다. 요즘 이준석 교수는 생각보다 그 꿈을 빨리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연구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