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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듣다

작곡과 정경영 교수(음악대학장) & 음악연구소(Music Research Center, MRC)

  •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음악학(Musicology)’이란 말 그대로 음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하는 게 아니라 학문적, 논리적, 과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연구하는 것이다. 음악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이해하고 성찰하기 위해 인문학, 사회과학, 문화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된다.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는 전통적인 음악학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소리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음악과 소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연구하는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구성원들.

‘음악연구소’(이하 연구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83년에 설립된 우리 연구소는 한양대 최초의 음악연구소입니다. ‘음악에 대한 다각적 연구를 통한 인문사회 분야 연구 역량 강화’를 목표로, 연주나 창작 활동 중심으로 발전해 온 우리나라 음악계에 음악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고음악’을 체계적으로 소개했고, 2005년부터 격년으로 국내 최초, 최대의 고음악 페스티벌 ‘국제 바흐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고음악 운동 붐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2015년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소리연구(Sound Studies)’를 집단 연구로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도 유일한 연구소로 꼽힙니다. 2015~2018년 대학중점연구소 사업에 선정돼 ‘소리, 공간, 이동: 사이공간의 소리환경 연구’를 수행했고, 2022년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돼 현재까지 ‘소리와 청취의 정치학: 문화와 기술에 대한 비판적 듣기’를 진행 중입니다. 음악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진행 중인 ‘소리와 청취의 정치학: 문화와 기술에 대한 비판적 듣기’는 어떤 연구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해당 연구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시작된 소리연구입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소리의 의미와 청취의 방식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문화와 기술의 다양한 양상과 변화가 어떻게 들리는지, 소리를 통해 어떻게 내재화되고 내면화된 사회적 취향과 정체성, 권력관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기술의 변화에 따라 소리를 매개하는 매체와 환경, 예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소리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죠. 소리를 바탕으로 계층이나 젠더, 지역, 세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또 소리와 관련된 기술, 환경, 예술을 살펴 그것이 우리 인간과 맺는 관계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음악연구소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의 의미를 탐구한다.

소리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해외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하는 곳들이 많은지 궁금합니다.

A라는 소리가 있을 때 이것이 어떤 이에게는 소음이 아니지만, 다른 이에게는 소음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소리로 여겨지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죠. 소리의 의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일상의 필수품이 된 내비게이션의 음성 기본값이 표준어를 구사하는,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의 목소리인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내하거나 비서처럼 도와주는 사람의 이미지로 표준어를 구사하는 20대 여성을 가장 많이 떠올리기 때문이에요. 소리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사회·문화적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다각적인 소리연구는 우리 사회를 더 세밀하고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음악학 분야의 연구 기관은 국제적으로 매우 많습니다. 소리연구를 중점으로 하는 연구소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소리연구는 기본적으로 전문 전공자가 있다기보다는, 역사학이나 철학, 문학, 음악학, 인류학, 미디어 이론, 과학기술학(STS) 등 원래 각기 다른 전공에서 소리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성격 자체가 매우 융합적이죠. 미래 사회로 나아갈수록 학문의 융복합적 연구가 중요한 만큼 소리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세 번째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3월 28~29일 이틀간, ‘청각적 미래: 미디어, 생태학 그리고 예술(Audible Futures: Media, Ecology, and Art)’이란 타이틀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세 번째로 추진한 국제학술대회입니다. 지난 2018년과 2022년에도 ‘소리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Sound)’, ‘차별화된 소리 연구(Differentiating Sound Studies)’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세계의 연구자들과 소통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세계 14개국에서 모인 연구자들이 29편의 ‘소리연구’ 논문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소리의 미래를 미디어와 생태학, 예술과 관련해 진단해 보고, 다양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의견을 나누는 장이었죠. 매우 흥미로운 주제와 여러 방법론을 담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현실적인 문제 제기 등으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또 논문 발표 이 외에도 ‘소리연구와 음악학 3분 발표 쇼케이스’ 등 다양한 특별 세션이 진행돼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현재 우리 연구소는 중점연구소 지원사업,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매년 국내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3년에 한 번씩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중입니다. 어느덧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명한 소리연구 학술대회를 열고 있죠. 이번 국제학술대회도 신청자 중 절반밖에 발표 기회를 얻지 못할 정도로 정말 많은 학자가 참가를 희망했습니다. 소리연구 경력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구소가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한 성과들 외에 연구소만의 남다른 자랑거리나 특장점, 경쟁력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 연구소는 1984년부터 『음악논단』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로, 우리나라 음악학 담론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저널입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와 논문게재 심사위원단의 공정하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연 2회 발간되고 있습니다.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연구 결과물들이 국내 학계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음악논단』 이 외에도 고음악, 음악학, 소리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도서를 출판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일본 소리연구 학회와도 교류 중이고요. 전통 있는 학술지, 여러 학술대회, 출판물, 뉴스레터 등을 통해 음악에 대한 학문적 담론의 장을 만들고, 다양한 학문 간 융합과 교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연구소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분위기가 최고의 장점입니다. 선임 연구소장이셨던 권송태 교수님 때부터 수평적이고 친근한, 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어요. 전임연구원과 공동연구원, 연구보조원 등 연구소의 구성원 모두가 화목한 분위기에서 음악학과 소리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향후 연구소의 운영 계획과 목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2년에 선정된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이 올해 8월 말 종료됩니다. 이와 함께 2015년부터 소장직을 맡았던 저는 한 발 물러나고, 계희승 교수님이 수장이 되어 우리 연구소를 이끌어 갈 예정입니다. 현재 다음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을 위해 ‘몸의 음악사: 질병, 장애, 죽음의 소리들’이라는 주제의 프로포절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음악학의 큰 범주 안에서 그동안 축적해 온 소리연구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이제 ‘음악하는 몸’으로 관심을 돌려 보려 합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를 가진 베토벤이나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슈만의 음악 속에 질병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죠.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질병과 고통, 죽음이 어떤 소리, 어떤 음악으로 나타났는가를 연구하고, 나아가 소리나 음악을 인식할 때 질병에 대한 선입견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학과 의료인문학’ 관련 연구에서도 우리 연구소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음악연구소’의 정경영 교수는?
  •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전공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
  • University of North Texas 음악학 박사(Ph.D, Musicology)
  • 2009년~현재 한양대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
  • 2015년~현재 한양대 음악연구소 소장
  • 2025년 현재 한양대 음악대학 학장
  • KCI 논문 30여 편, 단독저서 1편, 공저 5편, 단독 역서 1편, 공역 2편
  • 우수강의상 3회, Best Teacher 1회 선정
  • 음악학적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콘서트 해설, 프로그램 노트, 방송에 다수 참여
다양한 생각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수평적이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 음악연구소의 큰 장점이다.
음악연구소는 매년 국내학술대회를 개최할 뿐 아니라 3년에 한 번씩은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올해 열린 국제학술대회 모습들.
다양한 생각과 전문성,
열린 마인드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연구소
계희승 교수(작곡과)음악연구소 공동연구원

작곡과 이론을 전공한 음악학자로서 음악에 관한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음악학 연구를 하고 싶어 음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합류했습니다. 음악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열린 마인드로 서로의 다름과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점이 우리 연구소의 큰 특징입니다. 기존 지식을 단순히 재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식과 주제를 선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죠.
저는 오페라, 영화, 게임처럼 연출과 내러티브가 있는 장르의 음악/소리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현재는 질병과 장애, 죽음에 관한 음악문화사 서술에 주력 중입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주제로, 향후 이 분야를 우리 음악연구소가 선도할 수 있게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서양음악사 재서술을 시도하고, 순수 학문으로서의 음악 이론에도 집중하며 음악이론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고자 합니다.

전통 음악학의 틀에
비판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더한 곳
김경화 연구교수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음악연구소는 전통적인 음악학의 틀을 존중하면서도, 동시대 음악과 소리 현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흔치 않은 공간입니다. 이런 연구소의 지향점은 제 이상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음악연구소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연구 주제를 수용하면서도, 각자의 문제의식이 존중받는 열린 분위기입니다. 음악학, 소리연구, 인류학, 대중음악 연구 등 여러 분야가 유기적으로 교차하고, 서로 다른 관점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어요.
제가 꾸준히 품은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듣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듣게 되었는가’입니다. 음악학과 소리연구를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으로 음악과 소리를 삶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현대 음악과 청각 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듣기에 대한 이해를 비판적으로 확장하고 감각과 젠더, 기술, 생태적 환경이 음악과 소리 경험에 어떻게 얽히는지에 주목하며, 청취를 관계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지식과 성품 갖춘 선배들,
매력적인 소리연구가
이뤄지는 연구소
조미서 연구보조원음악학과 음악학전공 박사과정 5기

석사과정 3기부터 3년 가까이,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내 음악학계에서 존경받는 교수님들께서 계시고, ‘소리연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교수님들께서 학술적으로 뛰어나 배울 게 많을 뿐 아니라 학생들을 위하는 따뜻한 인품을 갖추고 계십니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을 함께하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두루 살펴주려 하십니다. 또 음악 작품이나 작곡가에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소리’까지 학술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학문적 한계를 뛰어넘고 있어요.
현재 박사 논문으로 19세기 말 프랑스 작곡가인 뱅상 댕디의 오페라에 나타나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연구를 진행 중이며, 연구소 프로젝트 중 하나인 버추얼 아이돌과 포스트 휴머니즘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음악과 사회, 그리고 K-pop과 소리에 대해 계속해 연구할 계획입니다. 서양 음악과 한국 음악, 다소 상이해 보이는 두 분야를 넘나드는 ‘만능’ 학자로서 국내 인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