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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추진하는 강력한 관세 정책은 국제사회와 세계 경제를 들썩이게 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복적인 관세 관련 발언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미국이 오히려 세계 경제에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 내 관세 강경론자들은 이러한 정책의 정당성을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전 세계의 군사적 안보와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지탱해 왔다는 논리로 설명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국민은 세계 안보를 위한 군사적 부담과 이를 위한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 왔으며,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 잡으면서 환율 왜곡과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발생해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 계층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본다. 즉, 미국 중심의 글로벌 시스템이 정작 미국 자신에게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과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 담당 선임고문이다. 이들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세계 경제 질서를 철저히 미국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시각에서 자유무역과 달러 패권은 미국 제조업 약화, 무역적자 확대,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전략이 바로 ‘다시 위대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강경론자들은 미국이 전 세계의 제조기지가 아닌 단순한 글로벌 ‘본사’ 역할만 맡게 된 구조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미국 내 제조업을 재건하고 첨단 산업뿐만 아니라 전통 제조업에서도 자립성을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관세 인상, 수입 규제,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의 국내 복귀), 해외 기업의 생산 시설 미국 내 유치와 같은 적극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한다. 단기적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이나 공급망 혼란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산업 기반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경제적 전략은 미국의 군사 전략과도 연결된다. 강경론자들은 미국의 군사력과 시장 접근이라는 혜택을 받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경제적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동맹국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무이자 영구채로 전환하거나, 미국 내 투자를 늘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관세 인상, 군사 지원 축소, 외교적 불이익 등의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 동맹관계조차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단기적으로 관세 인상은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수입 물가 상승이다.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소비자 물가가 높아지고, 이는 국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해지면 내수 경기도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소비가 경직되면서 경제 성장세도 둔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면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와 같은 경기 부양 정책마저 실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가 인하되지 못하고 오히려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이는 달러 가치의 강세를 유발하게 된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어 결국 미국 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수출이 줄어들면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될 위험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볼 때, 관세 인상 정책은 경기 침체나 경제 불균형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관세 인상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여,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즉 이론적으로는 제조업 기반의 일자리 증가와 국내 산업 구조의 자립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적 긍정 효과는 실제 미국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념적인 측면이 강하다. 미국의 경제 구조는 이미 서비스업 중심으로 고도화돼 있으며, 서비스업만으로도 실업률은 4% 안팎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또한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생산 비용을 고려할 때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불어 국제사회의 관점에서도 관세 인상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한 국가가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면 다른 국가들도 보복 관세를 통해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보복 관세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가져다줄 것이다. 1930년 스무트-홀리(Smoot-Hawley Tariff Act) 관세법이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었던 사례처럼, 현대의 무역전쟁 역시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글로벌 공급망을 훼손해 장기적으로 모든 국가의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유사한 사례로 많이 드는 것이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다. 19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당시 미국 경제가 직면한 심각한 과잉생산 문제에서 비롯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농업은 유럽의 농업 생산 감소를 대신해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전쟁 후 유럽 농업 생산력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었고, 미국 농업 부문은 가격 폭락과 재고 증가로 인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제조업에서도 미국은 1920년대 경제 호황을 겪으면서 생산 설비를 대규모로 확장하고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미국 제조업은 심각한 과잉생산과 재고 문제에 봉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값싼 외국 제품의 수입은 미국 생산자들에게 더욱 큰 타격이었다. 수입된 저가 상품으로 인해 국내 물건 가격이 추가로 하락하면서 미국의 농업과 제조업 생산자들은 수익을 내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시행하며 평균 40% 이상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역효과를 불러왔다. 각국이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응해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제 무역은 급격히 축소됐다. 미국의 수출 시장이 막히면서 과잉생산 문제는 오히려 심화되었고, 미국 경제는 더욱 깊은 경기 침체와 대공황의 장기화를 겪어야 했다.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흐름은 19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법 시행 당시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당시와 달리 수출 중심의 제조업 국가가 아니라 소비 중심의 서비스 경제 구조로 전환된 상태다. 따라서 과거처럼 관세 인상으로 제조업을 부활시킨다는 전략은 현실성이 떨어지며, 오히려 국제적인 긴장과 무역 갈등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관세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은 더 전략적이고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로,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교역 상대를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미국이나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무역 구조는 무역 전쟁이나 갈등 상황에서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유럽, 중남미 등 다양한 지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해 글로벌 무역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둘째, 첨단 기술과 혁신 산업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 보호무역 시대에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무역 갈등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공급망 안정화 전략을 더욱 철저히 추진해야 한다. 최근의 글로벌 공급망 혼란 상황에서 보듯, 해외 의존도가 높은 주요 원자재와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핵심 물자의 국내 생산 능력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국 보호무역 시대를 이겨내는 힘은 전략적 유연성과 미래지향적인 혁신에서 나온다. 한국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현명하게 대응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