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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쓰기’와 ‘읽기’의
결합을 통한 혁신적인 성과

생명과학과 김헌석 교수

  •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유전자 쓰기에 기반한 기존 기술은 많은 수의 유전변이를 분석하기 힘들었다. 한편, 유전자 읽기에 기반한 기존 기술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유전변이만 연구할 수 있었다. 김헌석 교수는 이런 한계들을 넘어 어떤 유전변이든 대량으로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최근 주목받는 환자 맞춤형 치료 및 정밀치료에 주요할 기술이다.

유전변이 분석, 더 쉽고 빠르게

김헌석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돌연변이 ‘쓰기’ 연구를 해왔다. 그러다 2019년부터 다양한 단일세포 시퀀싱을 통한 유전자/돌연변이 ‘읽기’ 연구를 접목했다. 유전자 쓰기와 읽기 분야는 각각 활발하게 연구되고 이용되는 분야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 읽기와 쓰기를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두 분야의 융합 연구는 활발하지 않으나, 두 분야를 융합하면 기존에 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 쓰기와 유전자 읽기를 모두 경험해 본 연구자로서 두 기술을 융합했을 때 나타날 시너지가 극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암 유전변이의 99.9%는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분야인데, 제가 가진 기술을 잘 융합하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수백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정상세포에 도입한 후 돌연변이 세포들을 단일세포 수준으로 롱리드 시퀀싱(나노포어 시퀀싱)으로 분석해, 다양한 돌연변이가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큰 스케일로 분석한 것이었다. 유전변이는 세포 내 유전자의 정상적인 기능을 변화시켜 암을 비롯한 유전질환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다양한 유전변이가 어떻게 세포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야 한다. 하지만 기존에는 유전변이를 세포에 인공적으로 투입하기 어려워 확보된 환자 샘플 내에서만 연구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유전변이를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유전자 읽기에 기반한 기존 기술은 환자 샘플이 없거나 희귀병이라 구하기 어려운 경우 연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 쓰기에 기반한 기존 기술은 한 번에 하나의 유전변이 세포를 만들어 분석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유전변이를 분석하기 어려웠습니다. 본 연구에서 개발한 TISCC 시퀀싱(Transcript Informed Single-Cell CRISPR sequencing)은 어떤 유전변이든 대량으로 한 번에 세포에 도입하고, 그 결과를 대량으로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샘플에만 의존한다면 10년 이상 걸릴 수 있는 대량의 유전변이 연구를 새로운 기술을 통해 한 번의 실험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김헌석 교수가 유전자 쓰기와 읽기 연구 분야를 동시에 섭렵했기에 가능했다.

유전자 읽기와 쓰기라는 기존 기술을 결합해 개발한 TISCC 시퀀싱 연구 논문 이미지들.

환자 맞춤형 치료에도 적용 가능

이번 연구는 다양한 유전자 쓰기 기술을 활용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샘플에만 국한하지 않고 언제든지 유전자 돌연변이를 효율적으로 연구할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때문에 첨단 바이오 기술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의 9월 11일 온라인판에 게재되며 주목받았다. 한편, 다양한 유전변이 특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환자별 맞춤형 치료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본 연구의 중요한 성과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정밀의료 및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김헌석 교수가 개발한 TISCC 시퀀싱은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도 중요한 기술이다. 다양한 유전변이를 가진 세포에 약물을 처리해 유전변이별로 각 약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면, 어떤 약물이 어떤 유전변이 세포에 가장 효과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

“환자가 가진 유전변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에 맞는 맞춤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유전질환과 관련된 유전변이 기능의 대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죠. TISCC 시퀀싱과 같은 첨단 바이오 기술로 환자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내원했을 때 유전자 분석을 했더니 3번, 6번 돌연변이 특성이 있다면 그에 맞는 치료제를 제공하면 됩니다.”

김헌석 교수는 어떤 유전변이든 대량으로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해냈다.

성실은 배신하지 않는다

유전변이 분석 등 첨단 바이오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포함한 유전자 쓰기 연구는 유전변이를 원하는 세포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줘 이번 연구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세포에 존재하는 유전변이의 종류는 DNA의 삽입/결실(Insertion/Deletion), 치환(Substitution), 역위(Inversion), 유전자 융합(fusion) 등 다양하다. 하나의 유전자 가위로 모든 유전변이를 세포에 도입할 수 없기에 더 많은 종류의 유전변이를 도입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김헌석 교수도 유전변이 종류별로 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를 개발해 유전변이를 세포에 더 다양하게, 더 정확하게, 더 효율적으로 도입할 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첨단 바이오 기술 분야는 미국이 선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연구 역량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몸담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분야의 국내 연구 수준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첨단 바이오 기술 분야는 경쟁이 치열해 속도가 중요한 연구 분야입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연구자들이 많은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선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김헌석 교수도 이번 연구를 논문 발표에 이르기까지 1년 만에 마쳤다. 유전자 쓰기와 읽기 기술을 결합하는 연구자가 많지 않음에도 선두 주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 결과다. 물론 그동안 진행해 온 유전자 쓰기 및 읽기의 오랜 연구 경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원하던 연구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열심히 실험했는데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는 일인지 하루하루가 의심의 연속이죠. 그렇게 의심이 들수록 결국은 매일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비록 오늘 열심히 노력한 일이 의미 없어 보여도 열심히 했다는 경험은 쌓이는 것이잖아요. 이러한 경험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1년 후, 5년 후에는 어마어마한 결과로 나타나겠죠? 그러니 열심히 산 오늘을 너무 의심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분명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루하루 성실한 연구자의 태도가 언젠가 좋은 연구 성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김헌석 교수의 말은 후학들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김헌석 교수 또한 유전자 읽기와 쓰기, 그리고 이들로부터 축적된 빅데이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유전변이 연구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성실히 이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