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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와 해저, 극한 환경에서도
고효율·고성능의 발열체 개발

유기나노공학과 한태희 교수

  •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한태희 교수는 그래핀과 맥신이라는 두 가지 신소재를 결합한 고효율 발열체를 개발했다. 본 연구는 3년 전 미국 육군연구소와 협력해 극한 환경에서도 병사들의 체온을 유지할 발열 소재 제작을 위해 시작됐다. 에너지 절감 고효율 발열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본 연구처럼 표면 온도에 대한 열효율 관점에서 추진된 연구는 많지 않아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꿈의 신소재 ‘맥신’과 ‘그래핀’의 만남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필수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기능성 발열 의류다. 신소재를 적용해 열의 방출을 막고 체온을 높여주는데 이름하여 ‘웜테크’가 일상에 도입된 사례다. 그런데 극지나 사막, 해저, 더 나아가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는 더욱 강력한 발열체가 필요할 것이다. 한태희 교수 연구팀은 필름 형태의 새로운 발열체를 개발해 지난 7월 재료공학 및 기초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인 『스몰(Small)』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특히 ‘그래핀(Graphene)’과 ‘맥신(MXene)’이라는 두 꿈의 신소재를 결합한 점이 눈길을 끈다.

“맥신은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신소재인데 금속과 탄소나 질소 같은 비금속 물질을 교대로 3~5겹 쌓은 나노 시트 물질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2013년경부터 차세대 핵심 소재로 맥신을 연구하기 시작해 2020년 세계 최초로 순수 맥신 소재로 이루어진 전도성 섬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미 육군연구소와 협력해 3년간 웨어러블 발열 소재 연구를 진행했죠. 그 결실 중 하나가 그래핀을 코팅한 맥신 히터의 개발입니다.”

맥신은 전기전도도가 뛰어나 발열성이 좋다. 건전지 한 개(1.5V) 수준의 낮은 전압에서도 100℃도 이상의 발열이 가능하다. 하지만 화학적 안정성이 떨어져 산소나 수분을 만나면 산화되는 점과 낮은 발열 효율이 취약점이었다. 극한 환경에서 발열 시에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한태희 교수는 맥신의 표면에 보호막을 도입해 보기로 했다. 이때 보호물질의 후보로 선택된 것이 맥신과 유사하지만, 구성 원소가 탄소 한 겹으로 이뤄진 그래핀이었는데, 그래핀은 화학적 안정성이 우수하다.

한태희 교수 연구팀은 두 나노 물질의 자기 조립 현상을 이용해 맥신 표면에 수백 나노미터 두께로 얇게 그래핀을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산화에 의해 성능이 저하되는 맥신을 안정화시켜 고효율·고성능 발열 필름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즉, 기존의 맥신이 지닌 뛰어난 전도성이라는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표면 그래핀 층이 수분에 대한 장벽을 형성해 줘 극한 환경에서도 발열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제작한 그래핀 나노코팅은 70배가량 맥신의 산화 안정성을 높이고, 발열 효율은 2배가량 높일 수 있었다.

그래핀과 맥신이라는 두 가지 신소재를 결합해 고효율 발열체를 개발해낸 한태희 교수.

고효율 발열체, 에너지 절감에 기여

“발열 소재의 가장 큰 문제가 지속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는 금속입니다. 전기전도도가 좋기 때문인데, 열전도도도 좋아서 전도 손실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온도를 계속 높이다 보면 화재 우려도 있죠. 그래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야 하는데 본 연구로 개발된 발열체는 그래핀의 높은 열효율과 맥신의 저전압 특성을 동시에 가져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구동이 가능한 소재입니다.”

본 연구의 성과는 고효율·고성능 발열 필름의 개발에 그치지 않는다. 나노 물질 간 시너지를 높이는 구조 디자인을 보고해 학술적 의의까지 높였다. 맥신에 그래핀을 코팅한 필름 소재가 왜 발열 효율이 높은지 그 원리도 학술적으로 분석해 낸 것이다. 한태희 교수는 기초연구까지 탄탄히 하면 확장성을 더욱 넓힐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개발될 수 있는 다른 물질 시스템에도 동일한 전략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각 나노물질 재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죠. 저희 연구실은 이렇게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 또한 맥신의 발열 원리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됐습니다. 앞으로도 맥신 자체의 화학적, 물리적 특성을 제어해 맥신의 전기전도성이나 열전도성을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또한, 본 연구 성과를 고효율 발열 섬유를 개발하는 연구로 확장할 계획이다. 면상 발열체인 필름은 신축성이 요구되는 분야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섬유 형태도 개발하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육군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극한 환경에서도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는 발열 유니폼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이번에 개발된 고효율·고성능 발열 필름과 연구 장비 모습.

세계 속 명품 인재 기대

열 관리(Heat Management) 기술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 체온은 생명 유지의 필수적인 요소(활력 징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태희 교수는 5년 전부터 열 관리 재료 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열 관리는 에너지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탄소중립 시대의 중요한 연구 주제다.

“전자 소재를 입을 수 있는 웨어러블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자 소재를 구동할 수 있는 동력에 관한 문제가 화두가 됐습니다. 야외활동이나 군사작전 중 웨어러블 전자 소재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바람에 구동시킬 동력이 모자란다면 효용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특히 발열체는 다른 광이나 소리, 신호발생기 같은 전자기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따라서 발열체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웨어러블 발열체의 상용화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죠. 또한, 에너지 절감에도 기여해 인류에게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고효율 발열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 중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탄소 물질을 이용한 연구 성과를 구축해 왔다. 최근 주요 연구 주제는 화재 방지 등 안전성을 높이는 방안과 저전력 발열 기술, 안정적인 발열 구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재 개발에 대한 것이다. 이번에 한태희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고효율·고성능 발열 필름은 이들 문제를 모두 극복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한태희 교수는 본 연구 성과가 양산화될 수 있도록 대량생산 기술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렇게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하나둘 사회에 상용화되는 경험을 쌓는 것이 한태희 교수의 연구자로서의 목표다.

“한양대의 건학정신인 ‘사랑의 실천’의 구체적 방법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실도 사람들이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한양인들도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인격자, 사회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면 적극적인 자세로 창의적인 연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길 바랍니다.”

한태희 교수는 기대를 높이면 자기 한계를 넓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연구실도 세계 연구자들과 어깨를 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한태희 교수는 한양인이 바로 ‘엔진 오브 코리아’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과감히 도전해 세계적인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태희 교수가 이끄는 ‘기능성하이브리드나노소재 연구실’ 구성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