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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오페라를 즐길 그날까지

라벨라오페라단장 이강호 동문(성악 84)

  • 글 이연주
  • 사진 이현구
이강호 동문이 이끄는 라벨라오페라단은 오페라 시장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선도하는 민간 오페라단이다. 2007년 5월 창단한 이후 50여 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라벨라오페라단은 2018년, 2020년, 2023년 세 번에 걸쳐 국가브랜드대상 문화 부문 대상을 거머쥐며 탁월한 역량을 입증했다.

오페라의 진수, 본연의 가치를 재현한다

오페라는 ‘작품’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노래와 연기, 춤, 기악 등이 망라된 종합 무대 예술이다.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연주, 고풍스러운 무대 구성과 극장을 가득 메우는 가수의 열창은 현장 관객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누구나 한번 경험하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장르다. 이강호 동문은 라벨라오페라단을 통해 오페라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전하고자 한다. 대중적 관심을 환기하고, 마니아들에게는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과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전개하는 중이다.

지난 8년에 걸쳐 이뤄낸 가에타노 도니제티 오페라 ‘여왕’ 3부작의 국내 초연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전 세계 어느 오페라 극장에 작품을 올려도 손색없는 작품성으로 관객과 비평가들의 극찬을 이끌었다. 잘 알려진 작품 대신 국내 초연작을 올린 데에는 대중에게 더 다양한 오페라를 전파하고 싶다는 이강호 동문의 신념이 뒷받침됐다. 오페라의 음악성으로 어필하겠다는 정수 전략이기도 하다.

“현재 오페라 무대를 보면,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 아주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잘 알려진 십여 개 작품만 반복해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팬층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몰돼 버리는 아쉬움이 있었죠. 한국에서 공연되지 않은 작품 중 예술성과 음악성이 뛰어난 오페라를 새롭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오페라는 뮤지컬과 연극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다. 그럼에도 진입 장벽이 높다는 선입견이 있어 관객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을 극복할 방안을 찾는 것이 이강호 동문의 오랜 과제다. 라벨라오페라단만의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오페라다운 오페라의 진수를 선보이는 것, 그렇게 대중을 오페라의 매력에 빠뜨리는 것이 이강호 동문이 추구하는 대중화의 길이다.

“오페라 프로덕션이라는 개념이 한국에서는 인지가 안 돼 있습니다. 아직은 했던 작품을 반복해 올리거나 외국 프로덕션을 한국 기획사가 수입하는 수준이죠. 음악을 제외하고 오페라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우리 라벨라만의 예술성으로 구현해 시장을 개혁하는 것이 오페라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오페라 작품을 올릴 때 어떻게 하면 더 예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이강호 동문. 크로스오버와 탈 장르에 익숙해지는 대중문화 흐름 속에서 라벨라오페라단은 오페라 본연의 모습으로 관객을 매료시켜 왔다. 이러한 열정에 관객들 역시 열렬히 호응했고, 민간 오페라단으로서 누적 관객 3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 공연계에 오페라가 뿌리내리기까지

라벨라오페라단은 국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명작 오페라 외에 창작극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키즈 오페라’다. 어린이 공연문화 산업이 그 어떤 때보다 호황을 맞이하는 요즘 키즈 오페라는 오페라 대중화를 앞당기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적 가치가 있어도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물로 여겨지죠. 그래서 예술적 본질을 지키면서도 산업화할 방법을 찾게 됐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모차르트나 도니제티를 들려주면서 오페라에 흥미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작품 초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성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일. 하지만 창작에서는 예술성과 함께 우리만의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 흥행으로 대중화를 이루고, 이로써 오페라 장르가 후세에까지 활성화하는 것이 이강호 동문이 이루고픈 목표다. 유럽처럼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오페라 극장 중심의 극단 운영이 어려운 국내 실정에 맞춘 해답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매년 천 명 가까운 오페라 가수가 배출되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 오페라 극장에 가면 한국 가수가 없는 극장이 없을 정도죠. 이것은 어쩌면 우리 오페라가 유럽 시장에서도 분명 경쟁이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강호 동문은 실력 있고 유능한 국내 오페라 가수들을 통해 창작 오페라를 성공적으로 올리고, 우리 콘텐츠를 세계 무대에 선보이는 선례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K-POP처럼 오페라도 한국만의 색깔을 입고 세계인에게 다가가 오페라의 새로운 부흥을 이루길 바라고 있다. 오페라의 대중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오페라가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준비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장기 공연이다. 트리플 캐스팅 등으로 두 달여에 걸쳐 공연되는 뮤지컬에 비해 오페라는 자본 여건상 세 번 이상의 공연을 펼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강호 동문은 포기하는 길 대신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내년 무대에 올릴 빈센초 벨리니의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Capuleti e i Montecchi)’는 국내 초연이자, 국내 최초의 10회 장기 오페라 공연이 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 첫 장기 오페라 공연을 마친 후 라벨라오페라단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향하게 된다. 한국 오페라 실력을 본 고장의 수많은 관객에게 증명하는 대여정이 될 예정이다.

이강호 동문이 이끄는 라벨라오페라단은 오페라 시장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선도하는 민간 오페라단이다. 사진은 ‘로베르토 데브뢰’ 무대인사 장면.

오페라 가수 중엔 신데렐라가 없다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 중에선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왜 이렇게 다 나이가 든 배우들뿐인가’ 하고 생각하는 분도 계세요. 사실 오페라 가수의 전성기는 마흔 중반이거든요. 소리도, 음악적 해석도 가장 절정에 있을 나이입니다. 뮤지컬처럼 젊고 인기 많은 아이돌을 캐스팅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오페라 무대인 거죠.”

이강호 동문은 오페라 무대 캐스팅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데렐라 배우’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차근차근 육성해 나가야 비로소 실력 있는 오페라 가수로 성장할 수 있다. 유럽처럼 오페라 극장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시장에서야 인재 육성이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 이뤄지겠지만 국내의 사정은 좀 다르다. 인재 육성을 개인의 재량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오페라의 명맥을 이어가기에 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강호 동문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한국의 육성 시스템으로 오페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15년간 매년 ‘라벨라성악콩쿠르’를 개최해왔다. 굳이 유학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신예들의 등용문이자 문화예술인 양성 기관으로서 큰 역할을 도맡아왔다. 열악한 문화예술 지원 체계와 오페라에 대한 선입견, 이 난관들을 극복하는 일에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 관객에게 진정성을 통해 다가서는 길만을 걷고 있다. 마이크 없이 커다란 무대를 장악하는 오페라 가수의 소리, 웅장한 스케일로 압도하는 오케스트라, 연기와 실력 있는 무대연출. 이강호 동문은 “오페라처럼 오감을 만족시키는 예술 장르는 없다”면서 현장을 통해 그 감동을 모두가 느꼈으면 한다는 진심을 전했다.

라벨라오페라단은 전국에 오페라 극장이 단 두 곳뿐인, 오페라 관람 인구가 1%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 무대에서 예술의 가치를 지키고 확산하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오페라에 헌신하게 했을까? 오페라가 긴 세월 명맥를 지킨 것은 예술인의 소명의식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이강호 동문은 “한양의 후배들 역시 예술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앞으로도 자극과 현란한 연출 대신 오랜 역사를 통해 전수돼 온 예술성과 가치를 전하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올가을엔 꼭 오페라 공연장을 찾아야겠다는 열의가 샘솟는다.

라벨라오페라단은 2018년, 2020년, 2023년 세 번에 걸쳐 국가브랜드대상 문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라벨라오페라단 연습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