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 Special
Issues & Trend
HY Insight
Research
Headline

폐기물 자원화와 조리흄 분석,
공학자의 사명은 실용 연구

자원환경공학과 권일한 교수

  • 글 박영임
  • 사진 손초원
권일한 교수는 버려지는 폐기물과 이산화탄소도 다시 보는 연구자다. 이를 다시 자원화할 수 있다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촉매연소연구실을 이끄는 권일한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폐기물 자원화 기술, 다공성 물질을 활용한 바이오 연료 생산 기술, 조리사업장 공기 질 개선을 위한 조리흄 분석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오해

환경을 위협하는 존재로 지탄받고 있는 플라스틱 폐기물. 그래서 많은 나라가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거나 재활용 기술을 연구하고 대체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 대안 중 하나인 생분해성 플라스틱 PLA(Polylactic acid)는 사용 후 생분해 과정을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돼 이른바 ‘착한 플라스틱’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과연 PLA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권일한 교수는 PLA의 생분해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생분해가 생각처럼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온도와 습도 조건을 맞춰줘야 합니다. 그리고 PLA를 재활용하려고 해도 오염이 많이 돼 있어 정제하는 과정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죠. 조성이 복잡하고 불순물이 섞여 있어 단량체로 분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이에 권일한 교수팀은 열분해 공정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PLA의 폐기물을 자원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가수분해하거나 용매를 이용했는데 폐기물 특성상 이런 방법으로는 물질을 선택적으로 추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권일한 교수팀의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열분해 공정은 물질마다 녹는점이 다른 점에 착안했기에 선택적인 추출이 가능하다. 즉, 폐기물 이전 상태인 PLA 단량체로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본 연구의 탁월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수행된 본 연구의 결과는 지난 6월 15일 화학공학 분야 국제 저명 학술지인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게재됐다.

권일한 교수팀의 기술은 PLA 폐기물 처리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열분해 공정을 통해 연료로 사용 가능한 가스를 생산해 대체 연료 생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권일한 교수는 이에 더해 PLA 열적 분해를 통해 생산된 열분해 오일을 활용, 대체 연료 및 고부가가치 화합물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산화탄소를 자원화하면?

연료 프로세싱을 전공한 권일한 교수가 폐기물 자원화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03년부터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탈탄소 정책으로 에너지는 탄소 사용을 줄이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대부분 탄소 기반 물질입니다. 에너지 산업과 화학 산업을 별개로 보는 것이죠.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탄소 사용량은 증가합니다. 따라서 제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과 사용 후 배출된 폐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원하는 현대사회는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요구하는데 버려지는 폐기물을 자원화한다면 자원을 절감하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권일한 교수는 폐기물을 탄소를 기반으로 한 원료의 하나로 인식하며, 이산화탄소도 단지 오염물질로 보지 않고 재료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열화학 공정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공정 내 반응 원료이자 반응 매개체로 활용하고, 탄소 원료로 사용해 폐기물 내 탄소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개발한 것이다. 기존 폐기물 자원화 과정에서는 다량의 탄소가 손실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탄소원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유해 오염물질의 발생을 제어했다.

권일한 교수는 폐기물에서 다양한 종류의 유용 자원을 회수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더불어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원료 전처리 과정이 필요 없는 바이오 연료 생산공정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찍이 탄소 배출 감소 및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폐기물 재활용 연구에 매진해 왔으나, 권일한 교수는 정작 환경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성적인 환경론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성과 지식을 기반으로 제언하고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한양인들에게도 이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감정에 치우친 연구나 판단을 주의해야 합니다.”

폐기물은 자원으로서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2019년에 화학공학자나 환경공학자들이 모여 탄소원 활용이나 폐기물 활용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심이 높지 않다. 이에 대해 권일한 교수는 연구자가 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결과라고 반성했다. 아울러 더욱 열심히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며 연구의 DNA를 후대 연구자들에게 물려줘 다음 세대를 위한 연결다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폐기물 자원화와 조리흄 측정ㆍ분석 연구를 진행 중인 권일한 교수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권일한 교수팀은 열분해 공정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PLA의 폐기물을 자원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명감으로 성과를 낸 조리흄 분석 연구

권일한 교수는 폐기물 자원화에 대한 연구를 20여 년간 수행해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에는 인체에 유해한 실내공기 오염물질에 대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1년 초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폐암으로 숨져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배출되는 발암물질 ‘조리흄(Cooking oil fume)’ 때문이었죠. 그런데 미량으로 발생하는 조리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대책 마련이 어려운 실정이더군요.”

급식실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조리흄 제거 기술이나 조리시설 규제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는데 측정조차 할 수 없다니 공학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폐기물 자원화 연구를 하기 전, 연료 처리 공정을 전공한 바 있는 권일한 교수는 뉴스를 보고 공학자의 사명감이 발동했다. 그래서 조리흄 측정 기술 개발에 착수, 세계 최초로 조리흄을 나노 그램 단위까지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권일한 교수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조리환경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법규 마련을 위해 공청회에 참여하는가 하면, 조리장에 분석 키트를 배포하고 이를 회수해 조리장 환경을 분석했다. 실시간 조리흄 처리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에는 ‘청명’이라는 이름으로 교수창업에도 도전했다. 권일한 교수의 진심 어린 각오가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는 5인 이상이 근무하는 조리업장이 79만 개나 있습니다. 조리흄 규제 관련 법규를 만들든, 정화 기기를 개발하든 우선 조리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평소 실용적인 연구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학자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