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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정서 안전망
진심 담은 손편지로 전하는 위로

사단법인 온기 대표 조현식 동문(국제학부 10)

  • 글 김현지
  • 사진 이현구
누구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만을 바라지만 인생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녹아든 길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눈앞에서 슬픔, 좌절을 맞닥뜨렸다 해도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 있어도 계속해 나아가면 출구에 닿듯이. 온기우편함을 운영하는 조현식 동문은 다양한 고민과 슬픔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현실로 구현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이 온기의 출발점입니다. 소설 속에서 과거의 인물이 고민 편지를 보내면, 미래의 인물들이 손편지로 답해주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런 이들이 실제로 일어나면 좋겠다 생각했죠. 소설 속 판타지, 그 동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일을 제가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조현식 동문은 외롭고 힘든 순간에 응원과 위로를 받는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2017년 첫 번째 온기우편함이 탄생했다. 손편지를 매개체로 삼은 것은 소설의 영향도 있지만, 사람의 진심을 담기에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만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조현식 동문은 익명으로 고민 편지를 써 보내면, 그에 맞춰 ‘온기우체부’들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낸다는 프로세스를 정했다. 직접 목공소에 의뢰해 우편함을 제작하고 페인트칠을 마치자 노란색 우체통이 만들어졌다.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 종로구 삼청동 돌담길 한편에 우편함을 세웠고, SNS 홍보를 통해 답장을 써줄 자원봉사자들을 모았다.

고민 편지가 안 들어오면 어떡할지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일주일 만에 60통에 달하는 편지가 취합됐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단발성 프로젝트로 계획했던 온기우편함은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조현식 동문은 취업 준비와 미래 설계로 바쁠 시기였다.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부터 반대하셨죠. 저 역시 이 길이 맞을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외롭고 우울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일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어요. 그래서 끝까지 해보자 결심했습니다.”

진심과 공감, 정성으로 전하는 손편지

2021년도 기준 조사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우울감 경험률은 11.2%, 우리나라 청소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26.8%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요인으로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공허함과 불안감, 외로움, 막막함, 슬픔, 절망 등이 제대로 공감받지 못하면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우울감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우울감은 개인의 삶을 좀먹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진심 어린 위로를 주고받는 온기우편함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온기우편함은 손편지를 매개로 정서적 지원 활동을 펼치는 세계 최초의 단체다.

현재 온기우편함은 전국 10개 시도 56곳에 설치돼 있다. 6명의 직원과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온기우체부 550명,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관·기업 26곳이 함께하고 있다. 한 달 평균 1500통에 이르는 손편지 답장을 발송하는데, 2017년 2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누적된 답장 편지는 2만 1122통에 달한다.

“손편지만큼 진심이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 악필이라며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필체보다 중요한 건 편지에 담기는 마음이죠. 우리의 이웃들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활동입니다.”

한 통의 답장 편지를 작성하는데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할애된다. 분량은 건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장 이상. 용기 내 고민 편지를 보낸 이들이 혹여라도 상처받지 않도록, 일종의 편지쓰기 테스트를 실시하고 피드백을 통과한 사람만 온기우체부로 활동할 수 있다. 편지를 작성하는 가이드라인도 교육한다. 제1 원칙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것. 그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2 원칙은 경험을 통해 공감을 전하는 것. 사랑을 해봐야 그 벅찬 마음을 알고, 이별을 해봐야 그 아픔의 강도를 실감하는 탓이다. 또 ‘~하세요’, ‘~마세요’ 등 지시형 문장도 절대금물이다.

“고민 편지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상에서 겪는 외로움과 우울함, 가족의 죽음, 사랑과 이별에 대한 고민입니다. 결국은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죠. 힘겨운 순간에 누군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작은 위로가 때론 큰 힘이 됩니다.”

조현식 동문은 생일날 혼자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우연히 온기우편함을 발견했다는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혼자서 외로웠을 걸음을 위로하고 싶어, 돌담길 입구부터 안쪽까지 걸어가며 마주치는 가게와 상황들을 세세히 묘사했다. 그리고 그 생일 때로 돌아간 당신의 옆에 내가 함께하고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편지의 주인공은 혼자뿐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누군가가 곁을 지켜준 것 같아 고맙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처럼 ‘위로가 됐다’, ‘오늘을 살아갈 힘이 났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이들이 있어 조현식 동문도 힘을 내고 있다.

온기우편함이 손편지로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진심과 공감, 정성이다. 누군가에게는 온기우편함의 손편지가 유일한 안부이자 위로일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손편지 위로를 전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게 온기우편함의 믿음이다.

마음을 다독이는 손편지, 가치를 전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재정적인 위기가 컸다. 그래서 조현식 동문은 IT 기획자로 일하며 투잡 생활을 병행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온기우편함을 운영하고, 그렇게 버텨온 시간이 무려 4년. 조현식 동문은 스스로의 의지를 다진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돌이켜 보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온기우편함을 꾸준히 운영하기 위해 돈을 마련해야 했죠. 주변 친구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커리어를 쌓는 걸 보면, 가끔은 마음이 흔들렸어요. 이걸 굳이 네가 할 필요가 있냐는 주변의 만류도 계속됐죠. 힘들고 고민되는 순간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람이 더 큰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매주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조현식 동문은 2년 전 사단법인 온기를 설립했다. 온기우편함을 조금 더 잘 운영하기 위해서다. 후원자에 대한 영수증 발부나 B2B 비즈니스 모델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단체 결성이 선행돼야 했다. 온기는 최근 한양대학교병원에 온기우편함을 설치고 내원 고객과 직원들의 고민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종합병원으로도 차츰 온기우편함을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병원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외로움을 느낄 이들을 보듬으려 한다.

온기는 온기우편함 설치, 운영 외에도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공개를 허락한 편지 사연과 답장을 모아 주 1회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그 내용을 엮어 책으로 펴내고 있다. ESG 임직원 봉사 및 정서지원 워크숍, 자립준비청년 대상 정서지원 워크숍도 추진한다. 시니어 세대가 청년 세대의 고민에 답하고, 청각장애인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프로그램도 있다.

“비영리 조직에서 중요한 것은 초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시작 단계에서 가졌던 진심을 잃으면 가치를 잃는 거예요. 저희는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자도,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기업·기관도 알음알음 소개를 통해 늘고 있어요. ‘내가 해보니 좋더라’, ‘의미 있는 활동이더라’ 하며 주변에서 연결해 주시는 거예요.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부분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라면 마음이 가는 대로 도전해 보길, 그렇게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길 바랍니다.”

조현식 동문의 궁극적 목표는 온기의 소셜 엑시트다. 외롭고 우울한 이들을 곁에 선 가족과 친구, 이웃이, 그리고 지자체와 국가가 살뜰히 챙겨 온기우편함으로 한 통의 편지도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올 때까지는 온 마음을 다해 진심을 전하려 한다.

익명으로 고민 편지를 써서 온기우편함에 보내면, 그에 맞춰 ‘온기우체부’들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낸다.
사단법인 온기 사무실에 마련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