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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의 이해와 관리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안전망

  • 글 의학과 이건석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일상적인 일들은 사람들의 귀에 솔깃한 이야기로 다가가지 못한다. 충격적이거나 놀라운 일, 잘 알지 못했던 일들이 뉴스거리로 주목받는 이유다. 최근 ‘묻지마 흉기 난동’이 일어나고 연일 뉴스화되며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이 범죄와 직결되는 것처럼 오인하는 경우도 늘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극적인 뉴스, 그 이면이다.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더 오래 기억되는 정신질환자 범죄

정신과 의사가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알 수 없는 상황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이 일이 왜 일어났을까?’, ‘저 사람은 왜 저 행동을 했을까?’하고 궁금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때로는 사건의 이면에 더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2007년에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이지만, 그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조승희여서 우리 사회에서도 큰 이슈가 됐다. 조승희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치료시설에 입원했었다는 사실도 논란이 됐다. 사건은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묻지마 범죄였기에 그가 앓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질환, 또는 그가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민 환경에 대해 주목했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정신질환, 환각성 물질을 포함한 마약류들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혹여나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 미리 설명하자면, 만약 누군가 살해를 당한다면 정신증(psychosis)이 있는 사람에게 살해당할 확률보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는 일반인에 의해 살해당할 가능성이 13배나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정신질환 자체가 타해의 위험성에서 안전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정신질환자의 행위가 더욱 부각되고, 범죄 행동의 이유를 정신질환으로 설명하기가 더 수월하며, 사람들의 뇌리에도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타 다른 질병과는 다르게 정신질환의 경우 의사의 진단에 크게 의존한다. 특이한 검사법 또는 영상, 혈액 검사 등 보여지고 설명할 만한 도구 없이 환자의 삶의 궤적,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주변인의 보고를 모아 오롯이 의사의 진단기준에 맞춘 진단이 이뤄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난다. ‘왜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느냐’는 반론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신이 나를 평가할 권리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질병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렇게 보이지 않는 질병에 대한 유일한 진단적 도구는 정신과 의사가 오롯이 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개념에서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많이 벗어났는가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바닷가에 가서 우리가 밟게 되는 백사장은 분명히 육지다. 하지만 파도가 드나드는 경계는 육지일 수도 있고 바다일 수도 있다. 마음의 병과 정상의 경계 역시 그러한 부분이 있다. 만조와 간조에 따라 달라지는 갯벌 역시 보는 시점에 따라 땅인지 바다인지가 바뀔 수도 있다. 대부분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병으로 진단하지 않고 명백한 부분들에 대해서만 병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경계의 상태를 가지고 정신의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정신질환자 관리는?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정신질환은 정의돼 있다. 그중에는 질병에 대한 인식을 못 하는 것이 증상인 질환들이 있다. 또 스스로를 해하거나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있어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를 법이 정한다. 흔히 정신건강복지법이라고 불리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전에는 정신보건법이었으나 치료를 받게 되는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법의 이름을 바꾸고 2016년 5월 29일 전면 개정했으며, 이듬해인 2017년 5월 30일부터 시행됐다.

해당 법률 시행 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정신질환자 정의의 변화다. 이전에는 여러 정신과적인 질병들을 포괄해 포함했다면, 이 법에서는 ‘망상, 환각, 사고(思考)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으로 축소됐다. 사실 정신질환이라는 정의가 중독질환 및 신경증을 포함하느냐 등으로 넓은 정의와 정신증으로 한정하는 좁은 정의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법에서는 아주 최소의 정의로 제한한 것이다.

둘째는 강제적인 입원치료 요건의 변화다. 이전에는 정신질환이 있거나(or) 자해 또는 타해의 위험성이 있다면 입원할 수 있었으나, 개정된 법에서는 정신질환이 있으며(and)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했다. 큰 변화가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적극적인 치료의 개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이 현격히 줄게 되었다. 질환이 심각하더라도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없는 경우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 본인이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이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도 주변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만약 가족이 애써서 병원에 데리고 오더라도 명백한 자해 또는 타해의 위험성이 없다면 치료적인 접근이 어려워진다. 어렵게 입원을 해도 행정적인 판단에 의해 위험성이 없다고 결론이 나면 치료의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퇴원 조치를 받게 되기도 한다. 이는 치료의 장벽이 되며, 결국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만들게 된다.

치료를 잘 받는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안전하다. 다만, 치료받지 않는 경우에는 증상이 악화되며 스스로나 주변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이 뉴스에 보도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국가가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취할 수 있는 정책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회방위적인 대응이다. 정신질환자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사회 안전의 관점에서 환자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는 강제입원제, 치료감호제, 치료명령제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제도를 시행할 때는 오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법적 절차가 요구되며, 사법기관의 심사와 판단이 제도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두 번째는 사회보장적 대응이다. 치료는 취약한 개인을 보호한다는 관점이다. 이는 질환의 치료와 생활에 대한 보호가 우선이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는 정신질환을 판단하는 의료기관의 판단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사회통합적 대응이다. 이는 정신질환자의 거취뿐만 아니라 부당한 차별의 제거, 의사결정의 존중 등 정신질환자의 평등권과 자유권을 확신시키는 논의를 포함한다. 과연 정신건강복지법은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며,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정신건강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적시에 필요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정신질환자 삶의 질 개선에 매우 중요하다. 질환이 심각할 때는 현실적인 판단이 어려우며,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될 경우가 잦다. 적절한 치료 이후 진료실에서 듣는 말 중 하나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와 “지금 돌아보면 큰일 날뻔했다”는 이야기다. 환자가 병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에서는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옛날에는 여행 시 지도책을 펼쳐보며 운전을 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그 역할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다 할 수는 없는 세상이다. 낯선 길을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켜 놓고 함께 호흡을 맞추어 나아가듯이, 질병이 있을 때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적절한 치료를 해나가야 한다. 차가 사고가 나 움직이지 못하면 견인차를 부르듯이, 마음의 병이 중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다. 차가 망가질 수도 있으니 견인차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은 보이지 않을 뿐이지 분명히 존재한다. 마음의 병 역시 눈에 크게 띄지 않을 때가 있을 뿐이지 엄연히 존재하는 병이다. 수많은 질병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다리나 손을 다치는 것처럼 마음도 일부가 아픈 것일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잘 알지 못하기에 큰 벽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누구든 걸릴 수 있고, 누구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이다. 우리가 아픈 것을 선택할 수 없듯이 누군가가 잘못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마음의 병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편견을 없앤다며 애써 있는 도움의 손길을 거두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병명 안에 사람을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들이 다 다르듯이 같은 질병이라도 다른 증상, 다른 예후를 가지고 있다. 병이 아닌 사람을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시선 역시 질병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 사람이 처한 상태를 함께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충분한 도움을, 이후에는 적절한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가 바로 인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