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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대에서
장애여성의 인권을 외치다

UN 장애인권리위원회 김미연 위원(식품영양학과 88)

  • 글 박영임
  • 사진 손초원
UN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미연 위원이 지난 6월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재선됐다. 2006년 UN 장애인권리협약 제정 시 장애여성 조항을 넣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김미연 위원. 세상에 장애인, 그리고 장애여성에 대한 인식의 창을 내기 위해 헌신하는 김미연 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장애여성’ 인권 조항 신설한 주인공

2003년 UN 총회에 가입한 지 15년밖에 안 된 우리나라가 일을 냈다. 당시 UN은 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하는 중이었는데 우리 정부가 장애여성에 대한 조항을 발의한 것. 그때만 해도 국제법과 국내법을 통틀어 전 세계 어느 법에도 장애여성과 관련된 별도의 조항이 없었다. 그런데 UN의 인권협약 제정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 없는 한국 정부가 초안에 없던 젠더의 관점을 추가하며 세상을 뒤흔드는 나라가 됐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장애여성 인권 보장의 선봉에 서기까지, 당시 본 협약을 제정하기 위해 특별위원회 한국 정부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김미연 위원의 열정적인 활동이 있었다.

“장애인도 여성, 남성, 영유아, 노인, 학생, 부모 등 다양한 역할과 입장이 있는데 사회는 그저 모호하게 장애인이라고 통칭해요. 이렇게 그냥 장애인 인권이라 하면 남성 친화적이기 쉬워 장애여성에게 부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UN의 여성차별철폐협약에도 장애여성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장애여성은 영원히 잊힐 수 있다는 위기감에 우리나라 정부를 통해 UN 특별위원회에 장애여성에 대한 조항을 만들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죠.”

이러한 노력 끝에 2006년 제정된 UN 장애인권리협약에 ‘당사국은 장애여성과 장애소녀가 다중적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하고 동등한 향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6조가 추가됐다. 장애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인권법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많은 국가가 복합적인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여성의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김미연 위원은 그 공을 인정받아 2018년 한국 여성 최초로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이 됐고, 2021년에는 위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아시아 여성 최초로 부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 6월, 185개 당사국 중 120개국의 지지 표를 받으며 차기 임기(2023~2026년) 위원에 재선됐다.

“장애인권리협약은 UN의 인권 최고 대표부가 관장하는 10개의 인권 협약 중 하나입니다. 이를 비준한 회원국들은 자국이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심의하는 일을 하며 이행이 충분하지 않은 국가에 최종 견해를 통해 이행을 권고합니다.”

김미연 위원은 지난 8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27차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일본 정부의 국가보고서 심의를 진행했다.
지난 10월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제3차 아시아태평양 장애 10년 행동계획’ 최종 평가를 위한 UNESCAP 최고위급 회의 참석 모습.

이제 도서관 갈 수 있어 행복

UN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비준 국가들이 장애인권리협약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기구라 할 수 있다. 2020년부터 2년간은 코로나 팬데믹 탓에 온라인으로 심의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별 시차, 시각장애인 및 인터넷 접속이 여의찮은 저개발 국가 소속의 위원 등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심의는 계속됐다. 올해부터는 온 · 오프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바뀌어 김미연 위원이 UN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를 직접 찾고 있다. 그런데 김미연 위원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스위스 같은 선진국은 장애인 시설이 잘 돼 있을 것 같죠? UN 본부에도 장애인 화장실은 하나밖에 없어 리모델링 중입니다. 북유럽이 장애인 천국이라 하는데 선진국도 문제는 많습니다. 스위스도 장애인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없으니까요. 또 제네바에서 출퇴근하며 알게 됐는데, 버스와 트램은 100% 휠체어로 접근이 가능했지만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들은 모두 층계로 돼 있어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국제법을 만들고 심의하는 일을 하기에 전문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미연 위원은 지난 학기부터 모교인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기 위해 전문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런데 입학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었다. 수업을 듣는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작년에 합격한 후에 돌아보니 제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등록을 유보했더니 고맙게도 전동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화장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었다고 들었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요즘 학교에 다니면서 제일 기쁜 일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학부생이었던 30년 전에는 계단만 있어서 갈 수 없었거든요. 이제야 마치 그때로 다시 돌아간 듯, 학교생활이 행복합니다.”

김미연 위원은 인권과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사진은 지난 9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권교육 강의.
김미연 위원은 전문성 향상을 위해 지난 학기부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전문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장애인권리협약은 인권의 완성

1992년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나만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다는 김미연 위원. 하지만 졸업 동기 중 본인만 취직을 못 하자 사회의 빗장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94년 장애인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어떤 상태이든 그 자체로 인간은 존엄합니다. 장애인들에게는 신체적 제약보다 사회적 폭력과 차별이 더 큰 장애물입니다. 예를 들어, 저같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이동 권리를 보장해 주려면 다룰 수 있는 휠체어 지원과 이를 지원하는 보험제도, 무엇보다 접근 가능한 교통 인프라 환경이 만들어져야 해요. 환경이 바뀌면 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걷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사회가 ‘장애’라는 것이죠.”

세계적으로 UN 장애인권리협약이 제정된 지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비준만 했을 뿐 아직도 협약 이행의 근거가 될 국내법이 없는 국가들이 많다. 장애인은 여전히 인권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흔히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따를 수 없어 현기증이 날 정도라 한다. 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세상의 변화는 굼벵이처럼 더디다. 그러나 김미연 위원은 장애인권리협약이 비로소 걸음마를 뗀 신생 국제인권법이니 조급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장애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장애인들이 UN 장애인권리협약을 무기로 국가에 권리를 주장하고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실제 겪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문제니까요. 장애인권리협약이 제정됐을 때만 해도 세상이 바로 바뀔 줄 알았는데 이제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UN 협약 비준 시 국내법과 같은 법적 효력이 발휘되고 UN 차원에서는 권고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권고가 쌓이고 쌓이면, 그리고 당사국들이 권고 이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간다면 인류는 분명 진보할 것입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이 인류의 역사에서 인권의 완성이 될 것이라는 김미연 위원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다음 4년의 임기 동안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부각된 자연재해, 내전, 기후 위기 등 위급상황 시의 장애인 인권과 보호에 대한 협약 11조, 위험상황과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 조항의 일반논평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기여할 계획이다. 이제 장애 이슈는 전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과 인류 공동체의 주요 이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UN이 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했으니 비준 국가들은 협약에서 탈퇴하지 않는 한 심의를 받고 NGO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콩나물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은 자라나잖아요. 저는 긍정적이에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전 세계 공통 국제법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을 기준 삼아 이행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김미연 위원은 전 세계 장애인의 인권 증진과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