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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간
당신의 여행은 행복한가

관광학부 이훈 교수

  •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팬데믹 전인 2019년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은 약 28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국내에 온 외래관광객도 1700만 명이 넘었다. 인간은 왜 여행을 다니는 것일까. 여행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단행본 3권을 연달아 출간한 이훈 교수를 만나 여행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행복과의 관계, 그리고 보다 좋은 여행은 무엇인지 물었다.

인류의 유희성을 탐구하다

약 20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그 결과 유럽, 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훈 교수는 여행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한다.

“인간의 DNA 속에는 진화 과정에서 남아 있는 이동과 여행 본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원래 인류는 수렵, 유목을 하며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죠. 현대에 오며 생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이동을 하며 지금의 여행의 형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행과 외출을 자제한 뒤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그리고 최근 방역 완화로 해외여행이 재개되니 억눌렸던 여행 욕구가 봇물 터지듯 폭발해 급기야 ‘보복 여행’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인간은 왜 이리 여행을 갈망하는 것일까.

“농경으로 정주하게 된 인간에게 지루함은 불행의 요인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게 됐죠.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는 행위로 가장 적극적으로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제 여행한 사람들은 행복감과 삶의 질이 높아지고, 그 기간이 2개월에서 6개월까지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이훈 교수는 지난 20년간 여행을 주제로 연구했다. 하지만 그동안 여행과 관광에 대한 연구는 호텔, 관광지에 대한 만족도와 재방문이라는 주제에 한정돼 있었다. 그래서 여행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행복과의 상관관계를 근본적으로 밝히기 위해 여행에 대한 장기 연구를 시작했다. 즉, 여행의 본질을 찾기 위한 연구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 2019년 한양대 관광연구소가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인문사회연구소’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 1단계 과정인 첫 3년 동안 6편의 국제 학술논문을 비롯해 26편의 KCI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이러한 1단계 연구성과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여행 속에 숨겨진 행복의 비밀>, <여행 행복론>이란 단행본 2편과 <더 즐겁게 여행하는 방법>이라는 번역서 1편을 출간했다.

이훈 교수는 여행을 통해 행복을 찾고 삶의 질을 높일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그 해답을 찾고자 여행 관련 책 3종을 출간했다.

여행에서 만난 우연성이 행복의 원천

<더 즐겁게 여행하는 방법>은 심리학자인 버지니아 머피-버먼(Virginia Murphey-Berman)이 보다 만족스러운 여행을 위한 방법을 심리학 이론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여행자들이나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했던 여행을 만족스럽게 하는 방법을 좀 더 구체화한 책이다. <여행 속에 숨겨진 행복의 비밀: 우연과 불확실성>은 여행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인 우연성과 불확실성에 주목한 책이다. 철저히 계획한 여행은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여행은 불확실성 속에서 마주한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과 우연이 주는 변화라는 것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마지막 <여행행복론: 여행으로 행복해지다>는 여행의 역사로 시작해 철학, 심리학, 놀이학을 중심으로 여행이 주는 행복은 무엇이고 행복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학술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조사를 해보면 누구나 가장 하고 싶은 것 1위로 여행을 꼽습니다. 실제 2019년의 경우를 보면, 전 세계 해외여행객 수는 15억 명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양적으로 증가했으나 여행자는 진정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을까요? 남들 가니까 따라서, 혹은 SNS로 보여주기 위해 가시적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행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여행 관련 책 3종을 출간했습니다.”

이훈 교수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서는 재미와 의미, 이 두 가지가 적절히 결합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마냥 일탈적이고 즐겁다고 좋은 여행이 아니라는 것. 의미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여행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줬을 때 여행자는 그 여행을 행복한 여행으로 오래 기억한다.

인간과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여행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행복과의 상관관계를
근본적으로 밝히기 위해 장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광학부 이훈 교수

지속가능한 관광을 고민할 때

여행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행은 그저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니었나. 하지만 인간의 단일 행동 중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활동이 여행이기에 극도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여행의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며 과잉관광이나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오버 투어리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관광을 즐기려는 관광권과 거주자들의 생활권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문화적 갈등이다.

“지자체와 국가는 ‘지역주민이 환영하는 관광’,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는 관광’을 위해 관광객 동선이나 시간을 조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거주민들의 생활권 보장을 위해 목욕탕, 만물상 등 지역에 꼭 필요한 상점들을 지원합니다. 한편, 관광객은 ‘관광시민’의 의식을 길러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미리 공부하고 문화와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책임관광(responsible tourism)’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관광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국제관광기구는 ‘공정관광(fair tourism)’을 통한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와 같이 많은 이들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1989년부터이니 50년이 채 안 됐다. 열차와 자동차 같은 이동수단의 발달과 경제 · 생활수준 향상을 통해 비로소 대중도 여행의 주체가 되는 여행의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양적으로 팽창한 만큼 여행의 질적인 성장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 코로나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국내 여행 · 관광 산업이 회복되면서 환경친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여행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규모는 지난 3년여 코로나 팬데믹으로 30년 전으로 후퇴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9년 대비해서는 약 50% 정도 회복했고, 내년에는 거의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도 하기에 관광산업은 혁신을 통해 사람을 위한 여행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 인간의 놀이를 탐구하는 이훈 교수의 연구 여정도 계속될 것이다.

“제 일생의 연구과제는 ‘성인을 아이처럼 놀게 하라’입니다. ‘호모루덴스’로서 인간을 재미있게 놀게 하는 연구죠. 여가와 여행, 축제, 관광은 적극적인 디오니소스적 놀이이며,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일상의 파괴와 새로운 일상의 생성을 만들어 반복된 삶을 긍정하게 해줍니다. 좋은 여행을 통해 세상에 내던져진 불안한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훈 교수는 (사)한국관광학회 회장으로 관광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앞장서 왔다.